<김영규칼럼> 교회는 역사 앞에 책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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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역사 앞에 책임져야

김영규 목사_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피조물이 창조자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뜻 자체가 죄의 시작이라면, 인
간이 그런 죄를 짓는 일은 하나님의 본성의 필연성으로부터 야기되지 않고 
하나님의 의지의 필연성에 의해서 야기된 것으로 이미 일종의 하나님의 형벌
의 시작이다. 
그런 형벌을 받는 자들에게 변명할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내적으로 은밀히 
증거하시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지식이 깊어질수록 그 증거를 크게 하시
는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양심을 만들어 겨우 그것으로 위장
하고 변명하며 급기야 이웃을 해하는 일을 서슴없이 행하는 것은 형벌을 넘
어서 재앙이다. 

하나님 떠나는 것이 ‘죄’

인류가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을 먹고사는 자로 소명을 받은 것을 잊고 자신
의 뜻 자체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살아가는 방식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할 때 거기에는 진정한 평화나 복이 없다. 강제로 아브라함의 부
르심으로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생활에서 겨우 회복케 하신 그런 
복된 삶의 방식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현장인 가나안 전 역사는 복과 저주의 
갈림길들이 아니었고 적은 굴곡이 있을 뿐 계속된 저주들의 바닥까지 가는 
역사였다. 
그런 죄인으로서의 역사는 홀로된 역사이지만 이미 주어진 은혜의 내용을 빼
앗지 않고 거기에 은총을 더하시는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역
사가 오히려 그들에게 선이 되게 하시는 역사였다. 스스로 유리하는 자가 
된 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보존의 표가 주어졌어도 여전히 아직 스스로 자신
의 죄를 위장하는 문화와 문명의 역사는 그 자체가 복과 저주의 혼합물이
다. 
아무리 방어용이라고 해도 핵무기나 대량살상무기 개발 자체는 한 국가가 다
른 국가를 해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이상 먼저 이웃에게보다 개발 
당사자에게 근원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개발하는 동안 직접 자신
의 정체를 숨기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평화로 위장하기도 하며 그 무기가 크
면 클수록 경우에 따라서 재래식 무기에 의해서까지 위장해야만 하는 그렇
게 치밀한 정신적 활동 자체가 이미 받은 큰 재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대량살상무기로 위협하든 칼로 위협하든 법으로 위협하
든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한 조금도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대적들이 
쏘는 것은 겨우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신 관원들
의 사명은 역사의 중심에 관한 사명은 갖지 못해도 교회의 사명보다 더 보편
적이고 더 넓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권력과 칼이 주어졌을 때 그 책임이 더 
큰 것이다. 
영원한 죽음은 하나님의 은총이 없는 곳에 있고 하나님이 원하시면 죽음도 
없다. 그러나 다만 인간의 구원이 인간으로부터 어떤 것도 고려되지 않고 오
직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에만 그 원인이 있다고 해서 실제적으로 마지막 죄
로부터 회개하기까지 그 동안 죄를 마음대로 지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과 영원한 나라에서 가장 분명히 보존되어 있는 자신의 
그 정체성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든 자신과 관련된 과거에 대한 어떤 정보들
은 그 자체로 가장 큰 부끄럼으로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보이시기를 원하시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날 영광의 차이가 거기에 있을지 아
무도 모른다. 따라서 가장 불
쌍한 자들 안에 죄를 짓는 당사자도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 안에 안식 있어

그렇다면 선량한 이웃들과 자신이 죄인인줄 모르고 죄를 짓는 당사자에게 선
이 되게 하는 일은 헤아릴 수 없는 힘과 능력이 필요로 하다. 그러나 생명 
자체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죄의 행위 자체는 단호히 징벌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아주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
로 극복하는 과정에서조차도 우리 자신 안에 깊은 죄의 뿌리가 그 부패 현상
으로 세상에 늘 나타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사실 타인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들이 아니고 실제로 자기
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간다고 해야 할 것이다. 누구에게 먼저 
탓하기 전에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사는 나그네의 삶은 그 만큼 고달픈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모두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쉼을 얻
을 수 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곳에서 쉼을 얻으려고 했을 때 거기에서부터 진정한 쉼은 
없어질 것이다. 죽음은 가는 길을 멈추는 곳이면서 영원한 쉼으로 가는 다리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