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에게서 배우는 지혜
유익순 목사_제주성도교회
어느 모임엔가 참석하여 식사를 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목사님 한 분이 지친 모습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귀엣말로 하시
는 말씀이 “어떻게 하면 목사님처럼 당당할 수 있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몸부림치던 시절 기억나
며칠 전 친한 목회자 사모님 한 분이 “목사님은 걱정 없이 평온하게 목회하
시는 것 같습니다”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에 대해 수영에서 씽크로나
이즈 선수가 물 위의 평온함을 유지하기 위해 물 속에는 많은 몸부림을 치
고 있는 것처럼 나 역시 그렇다고 말한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 곳에 몇몇 교회를 개척하다 보니 제법 세월이 흘렀습니다. 가는 곳마
다 처음에는 아직 교회당이 없으니 마을회당을 빌렸고 그 나마도 없으면 심
지어 나무그늘 밑에서 예배하기도 했습니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사역은 지금도 계속되어 아직 임직자도 세우지 못한 임시
목사가 무슨 자랑거
리가 있어 당당하게 보였을까요. 늘 부족한 것이 있고 아
쉬운 것이 많았던 세월 속에서 어떤 점이 부족함 없는 모습으로 보였을까
요. 목회가 어렵다고 하는 시대에 목회가 규모에 관계없이 흔들리지 아니하
고 본연의 사명을 다 할 수 있다면 이 또한 귀한 일일 것입니다.
개미는 지구상에 있는 동물 중 가장 규율이 엄격한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
다. 평생 쓸 난자를 몸에 지니고 태어나는 여왕개미는 일생 동안 수 만개의
알을 낳습니다. 여왕개미는 알에서 나올 때부터 다른 개미보다 몸집이 크고
가슴에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초여름 날에 여왕개미는 수캐미들을 거느리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결혼 비행
을 하게 되는데 교미를 마친 여왕개미는 땅으로 내려와 제일 먼저 자신의 날
개를 떼어버립니다. 여왕개미에 있어서 날개는 아름다움의 상징과도 같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위해 땅에 뒹굴며 문질러 기어코 떼어냅니다.
날개를 떼어버린 여왕개미는 돌 밑에다 저 혼자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작
은 입구의 굴을 파고 그 안에 십여 개의 알을 낳습니다. 알을 낳은 후 여왕
개미는 이 때부터 마치 자신이 여왕개미라는 사실을 잊기라도 한
듯이 일개
미가 되어 부지런히 알을 돌봅니다.
본래는 일개미들이 하던 일이지만 알이 일개미의 모습을 갖출 때까지 직접
합니다. 그러나 애벌레가 깨어나 일개미가 되면 여왕개미는 그 하던 일을 멈
추고 다시 여왕의 역할로 돌아갑니다. 비록 일개미의 수가 몇 안 되는 작은
수일지라도 본능에 따라 그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 알만 낳습니다.
교회가 개척이 되면 목회자도 마찬가지여서 처음에는 교회의 모든 일들을 직
접 다 하게 됩니다. 재정집사의 일도 해야 하고 전도부장의 역할도 해야 하
고 심지어는 관리인의 일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적당한 때에 그 하던 일을
모두 위임하고 목회자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하는데 계속해서 성장 일변도
로 가는 목회자들을 많이 봅니다.
교회는 그 규모에 관계없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며 하나의 지체로서 본분
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체들이 각기 그 역할에 충실할 때에 비로소 교회만
이 가지는 본질을 지켜갈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만일 소신에 따라 목회하
지 못하고 이미 교인들에게 위임해야 할 일들을 지금도 대신하고 있다면 교
회가 추구해야 할 본질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행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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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학문을 나서면서 나름대로의 비장함으로 ‘소신’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달려갑니다. 그것은 매우 귀한 것이며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
나 목회를 하게 되면서 목회의 결실을 중시하는 상승욕구와 맞물려 신학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폄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위험한 생각입
니다.
만일 목회자가 소신을 져버리고 신학빈곤과 이념부재로 본질을 떠나 교회간
의 경쟁과 쟁탈 속에서 오로지 성장을 위한 방법만을 모색하는데 부심한다
면 비록 교회의 외형은 비대해 질 찌 모르나 목회자 자신은 자기류적인 역설
에 흐르게 되고 섬기는 교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을 갖추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일선의 목회자들이 교단의 신학적 전통과 규정들을 지키며 소신을 가
지고 목회 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그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듭니
다. 그렇다고 해서 목회자가 교회의 모든 관심을 ‘성장’에만 두고 교회를
위한 목회의 본질에 소홀히 한다면 목회는 표류하게 되어 정체성이 흐려지
고 중요한 원칙들이 무너져 내리게 될 것입니다.
신학적 전통과 규정 지켜야
이러한 때에 가장 작은
몸을 가졌으나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함
으로서 결코 작은 무리가 아닌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집단인 개미에게서
우리는 그 답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잠 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