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미래지향적 시대
김영규 칼럼_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현대 사람들이 웰빙으로써 종교 생활을 좋아하여 딱딱한 언어 생활이나 교리
보다 송축이나 송영으로서 더 나아가 극(劇)이나 색깔이나 선으로 표현하는
것을 더 매력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가까운 일상 생활에 대해서도 말해 보
고자 한다.
편리함 추구하는 사회
최근 북쪽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 방송 보도와는 달리 신문에서 국가의 위기
관리능력에 초점에 맞추어 분석하고 세계나 주변에 대한 한국의 독자적인 정
보 능력에 있어서 그 한계를 파헤친 결과를 보고 국민은 놀랄 것이다. 신문
의 한계는 1차 정보를 손에 쥘 수 없다는 것뿐 위기에 대한 그 분석 능력은
정부보다 신문사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주로 하는 일이 개인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찾아가서
라도 가능한 그들의 자유를 누리도록 돕고 그 대신 국가는 어떤 개인들도
할 수 없는 궂은 일만을 맡아서 일한다면 국민들은 더 기분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몇 초 내에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에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는 것
에 대해 스스로 놀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토론이나 이해 혹은 예측의 문제
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북쪽에 있는 같은 동족에 대한 배려보다 어두운
밤에 갑자기 일어난 테러에 대한 국민의 불안이 더 앞서 거기 고려되지 않았
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정책의 방향과 인사 관계를 보면서 가사일 하듯이 개인적인 경험
을 가지고 국가 경영을 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느꼈을 때, 국가의
관원들에 대한 기도가 부족한 것이 아닌지 모른다. 사회 일원들의 전 의견들
에 대한 흡수도가 넓으면서도 처리 방식은 예측 밖의 고효율 창조적 아이디
어가 그 정책의 내용이기를 바란다.
고효율 작은 정부 정도를 넘어 현대 시대에는 공직자들이 재택 근무까지 하
면서 국민의 세금을 적게 쓰고 자신의 경영에 대해서 평생 책임을 지는 미래
지향적으로 극대화된 전문적인 서비스 정부가 그 방향이 아닌가? 공직자들
이 국가의 세금들을 분배하는데 있어서 전부 마지막까지 챙기는 방식으로
큰 정부와 관료주의로 가면 국민들은 점점 더 고통만 당한다고 생각할 것이
다.
최근에 신문으로부터 한국 기업의 내적 스피드의 둔화에 대한 지적과 정부
의 브레이크에 대한 비판 및 현대 자동차의 실제적 기술력에 대한 비판도 눈
에 띄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일본 경제학자 사카기바라의 한국 경제에 대
한 조언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이 왜 스웨덴처럼 경제개발 내용으로 거의 100%에 가깝게
전면 수소에너지 사용정책이 나오지 않는지 궁금하다. 로봇의 가정생활화에
대한 정책처럼 좋은 아이디어이었지만 물거품이 될까봐 그런지 모르겠다. 승
용차 이용은 건강과 쾌적한 생활 및 여가에 있다면 더 아름답고 편안한 자동
차가 인간화에 맞을 것이다.
전철이나 철도에 대한 현대 시대의 필요성은 그 스피드에 있다면 그것의 속
도는 지금보다 빠른 것이 인간화에 맞을 것이다. 여러 기능들이 하나가 되
고 적당한 분활화가 그 특징인 삼성의 울트라 모바일 PC는 아직도 개발이 되
지 않은 펜 마우스 사용보다 터치스크린의 사용이 덜 인간적인 면이 있는 것
과 마찬가지이다.
아마 세기적 경향인 ‘르네상스 맨’에 대한 러플린 교수의 지적은 정확한
지적이지만 과학에 대한 인간의 궁극적 한계
에 대한 그의 표현이 더 마음에
든다. 천문학과 물리학 및 인지과학이 하나가 되고 기존의 인문과학들이 의
학 안에 흡수된다면 그런 통합과학들에 따라 완전히 세분화된 전문분야들로
국민의 전 인적자원들이 나누어지는 혁명들이 국가 안에 이루어져야 가까운
미래 사회를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샌디에고 대학과 같은 미국 대
학들의 발빠른 대응이 부러울 뿐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교회는 더 이상 미국교회를 모방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미국 사회에서 황폐화된 교회의 타락으로부터 그나마 남아 있는 보수 신앙들
을 모아 성도의 신앙 생활을 현대 웰빙 문화에 접목시켜 교회의 순수성을 완
전히 타락시켜 버린 미국 대형교회의 목회 방식과 목회자들을 한국 교회가
찬양하고 큰 교회들이 성도들의 신앙 생활을 그런 신앙 생활의 방향으로 몰
고 간다면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이제 버리실 것이다.
교회 순수성 보존돼야
교회의 가치는 그 진리에 있지 교인들의 수에 있지 않다. 교인과 그 교회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가깝게 있느냐에 세상에서의 존재가치가 있지 세상 사
람들에게 얼마나 잘 보이느냐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안에서 교회
의 위기는 한국 사회 앞에 있는 목회자들과 신자들의 신앙 생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