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의 마음
정창균 목사·합신교수·새하늘교회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한 교회의 담임목사와 신학교의 교수가 되어 바삐 지내
고 있을 때 어느 날인가 제 아버님께서 제게 진지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제 창균이 너는 잊어버린다.”
그동안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제 앞가림도 못한 채 신학 공부한다고, 가난한
부교역자로 교회사역 한다고 그리고 유학생활 한다고 나이 40이 되도록 힘들
게만 사는 자식을 바라보며 한시도 걱정을 놓을 수 없었던 아버님께서 이제
안정된 목회에 정착하는 저를 보시며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한 시름 덜었다
는 안도의 표현인 것이었습니다.
한 시름 더신 아버지
아버님은 제가 어릴 때도 제 큰 누님이 결혼하여 잘 사는 것을 보시면서 “내
가 그 아이는 잊어버린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생하
며 힘든 과정을 지내는 작은 누님을 두고는 그렇게 못 잊어 하시면서 눈에 밟
힌다고도 하시고 자다가도 생각이 난다고도 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 제게
“너는 이제 잊어버린다”고 하실 때까지 저는 아버님에게 “눈에 밟히는 자
식”이고 “자다가도 생각나는 자식”이었던 것입니다.
10년 넘게 담임목회를 해오면서 요즘 들어 저는 교인들을 보면서 부쩍 그런
말씀으로 자식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셨던 아버님의 심정이 절절하게 떠오르
곤 합니다. 부모에게는 “이제 안심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자식”과 “눈에
밟혀서 자다가도 생각나는 자식”이 있다는 아비의 그 심정이 어떤 심정인지
우리 교인들을 보면서 실감이 나는 것입니다.
물론 교인들이 제 자식인 것은 아니지만 목회자가 품는 교인들에 대한 마음
이 때로는 마치 아비의 마음과 같다는 것을 확인하곤 합니다. 오랫동안 안타
까운 마음으로 걱정하며 기도해온 사람인데 드디어 모든 게 잘 되어서 안도하
는 마음으로 이제 잊어버릴 수 있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직도
자다가도 생각이 날 만큼 마음이 아프고 또 걱정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다가도 생각나는 성도들 있어
사정이 얼마나 딱하고 마음이 아픈지 한 때는 새벽에 그 사람들을 위하여 기
도할 때마다 “내가 하나님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 간절하게 들기도 하였
습니다. 단번에 그들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때로는
이 분들만 잘 되면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제 나는 할 일 다 했다”며 홀
가분하게 나의 길을 갈 수 있을 텐 데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인들을 바라보며 이러한 마음을 품는 것은 저의 타고난 성품이 그러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목회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모든 목회자들이 자기의 교
인들에 대하여 품는 공통된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목회자들
에게 주신 본능에 가까운 것이기도 합니다.
두어 주 전에 지방에 있는 한 교회에 집회인도 초청을 받아 갔습니다. 그 목
사님은 예배당 옆에 있는 목양실을 온돌방으로 꾸며놓고 거기서 살다시피 하
고 있었습니다. 집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목사님 소유의 대형 아파트가
있는데도 거기서 살지 않고 그렇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새벽 한시가 되건 두
시가 되건 자다가도 교인 생각이 나면 즉시 일어나 강단으로 올라가 엎드려
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부르짖으며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이었
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형 아파트에서 편히 사는 것보
다 좋다는 것이었습니
다.
어쩐지… 그 말을 듣고서야 저는 그 교회에 들어가 앉으면서부터 품었던 의
문이 풀렸습니다. 교인들이 심지어 장로님까지도 목사님을 마치 아버지를 모
시듯이 하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그렇게 아비처럼 그 교인들
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목사님을 보면서 저는 오히려 부끄러웠고
우리 교인들에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부끄럼 느껴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고속열차 안에서 사도 바울의 말씀이 자꾸 떠올랐습
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기쁜 마음으
로 전할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 우리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습
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아버지가 자녀를 대하듯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아주었습니다… 진실로 여러분은 우리의 영광이며 기쁨입니
다.”
눈물이 핑 돌며 사도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우리의 목회
현장도 이러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