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너무나 독특하게 기록된 성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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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독특하게 기록된 성서들”

김영규 목사_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독일의 철학자 에드문트 훗설이 할레대학을 떠나 궤팅겐 대학에서 철학강의
를 시작하면서 의식은 근원적으로 지향적이며 의식의 그 지향적 행위에 의해
서 지각뿐만 아니라 기억도 구성된다는 사상이 수강자들에게 전달되었다. 이
런 사상을 중심으로 과거의 철학적 모든 사유들이 그에 의해서 엄밀하게 비판
됨으로 그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20세기 현상학파와 실존주의의 큰 흐름이 이
루어지게 되었다. 아마 현상학파나 실존주의는 사라질지라도 그 지향적 구성
에 대한 시각은 오늘날 모든 사상가들에게 일괄적으로 수용이 되고 있는 셈이
다. 

훗설 주장 지금도 수용돼

오늘날 뇌 과학에 의해서 이런 시각이 더 깊어져 관련된 뉴런들 안에서 기억
소자로서 단백질들의 형성, 변형 및 역학기능과 더 근원적으로 관계하는 인자
들 사이에 계속적 정보전달 방식들에 대한 새로운 관찰에 의해서 그 능동적
인 성격이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오늘날 컴퓨터 안에서 레이저 빛이 
표면을 각인하고 지우면서 소위 저장하고 읽어내는 방식으로 기억해 내는 것
과는 전혀 다른 능동적 방식임에는 틀림이 없다. 
문제는 그 능동성의 근원에 대한 것이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
게 기억이 되고 어떻게 기억해 내는지가 신비이다. 검사의 심문에 의해서나 
자신의 자발적인 기억에 의해서 표현할 때, 사실을 있는 그대를 의식 속에 각
인하고 그 각인된 것을 그대로 기억해 낼 수 있는가는 우선의 과제이지만, 과
연 사실들 중에 무엇이 있는 그대로 사실인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
다. 
자기 자신과 사회 및 시대에 대한 본질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자신과 사회
와 시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긴 시간을 두고 사실을 밝힌다는 것
은 대부분 끊임없는 물음들에 대한 틀리지 않은 말의 형식들을 만들어 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과거 역사의 가장 객관적 기록들도 우리의 지향적 초
점들이 향하는 무한한 관점에 따라 기록된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요구하는 
말의 형식들의 수준들에 의해서 기억이 되고 기록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말의 형식 시대마다 달라

애굽의 아부시르 엘 멜레크 지역에서 후기 프톨레미 시대의 탄화된 파피루스 
뭉치들이 발견된 적이 있다. 그 안에 문헌자료들도 있지만 대부분 대략 주전 
97년에서부터 63년에 걸쳐 보관되었던 공공문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
데 옛 파로스 헬라비문에 보관방식에 대해서 잘 증거되었던 대로 도시성전들
과 도시의 공공 문서보관소와 각 개인들이 집에 보관되었다고 하는 그 문서들
이 적어도 로마시대 초기에 실제로 어떻게 보관되어 있었는지에 대한 증거가 
거기에 있었다. 
물론 문서로 인한 소송사건이 있게 되었을 때, 각각 다른 곳에 사본들이 보관
된 문서들 사이에 차이가 발견되게 되었을 때 그 문서의 조작, 삭제 및 누락
에 대해서 그 관리자들이 처벌받는 것은 헬라 로마시대에 비롯된 것이 아니
고 고대 슈메르 파라시대(주전 2600년) 이전부터 있어 왔음이 추론되거나 잘 
증거되고 있다. 
그 발굴된 내용에 따르면 관할 영역에 따라 크고 작은 문서보관소에서 관할지
역 내에서 발생한 서류들이 정리될 때 원본들과 상관없이 시기적으로 발생된 
순서에 따라 높은 관청에서 받은 서류사본들, 높은 
관청으로 보낸 원본의 사
본들, 관할지역 내에서 발생한 원본들이 함께 왼쪽이나 오른쪽에 이어서 하나
의 두루마리로 만들어 보관되었다는 점이다. 
헬라 후기의 포발제도에 따르면 아침 9시에 받거나 오전 12시 혹은 오후 5-6 
시경에 받거나 보내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로마시대에는 거의 2 시간마다 
받거나 보내졌다. 따라서 관청의 경우 그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이어진 문서들
의 날짜들을 보면 하루에 여러 통의 서류들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군대 관할권만 제외하고 행정권과 재판권 및 조세 관할권을 가진 자로서 그 
당시 문서들에 대해서 최종 책임이 있는 관원은 관청 서기들이 기록한 서류들
에 대해 자신의 짧은 메모나 날짜를 가진 서명에 의해서 최종 검열하여 보관
하고 있다. 지금 그렇게 검열된 각 종 문서들은 직접진술이 기록된 재판기록
들에서조차도 일정한 관용문들에 의해서 잘 형식들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형식들이 그 당시 글을 알거나 기록하는 사건기록의 최종 객관성이었다.

세상에선 형식으로 객관성 입증해

그러나 신약성경의 기록은 그 당시 기록적 습관인 그런 객관성에 따라 기록
된 
것도 아니고 일반 목격자들의 지향적으로 다양하게 보고 기억하는 초점에 
따라 기록된 것이 아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역사의 가장 중심적인 시야에 따
라 성령의 은혜와 신앙을 가지지 않고 믿을 수 없고 그 객관성에 참여할 수 
없는 그 시대가 산출할 수 없고 어떤 기록의 방식으로도 비교될 수 없는 방식
으로 기록이 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