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장로(1)
김북경 총장_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장로는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필자가 1978년 런던에서 한인교회를 개
척한지 얼마 안 되어 한국에서 장로님 한 분이 해외근무 차 런던에 오셨다.
그 장로님은 교회 재정 상태를 보시고는 걱정하셨다. 특히 목사의 사례금이
턱없이 적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 장로님의 제의로 인상된 사례금을 받고 행
복해 했던 적이 있다.
목사와 장로들과의 관계는 재정문제로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
장로들은 교회 살림을 도맡아 하는데 특히 목사에 대한 대우를 잘 해드리는
것을 중요한 임무로 생각하는 것 같다. 타작마당에서 낱알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가끔 사례금 때문에 교회에 문제가 생길 때가 있다. 넉넉하지 못한 살
림에 쪼들려 사는 사모는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 불만을 목사인 남편에
게만 내놓고 터트린다. 그러나 남편은 별 반응을 안 보인다. 그래서 매년 말
교회 예산을 세
울 때가 되면 사모들의 기도가 더 뜨거워지는가 보다.
어떤 성도들은 목회자 생활 수준이 낮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목사는
성직자이기 때문에 평신도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모는 세
탁기를 사용하면 안 된다든지, 사모가 쥐 잡아 먹은 것처럼 입술 화장을 하
고 다니면 덕이 안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목사는 고행을 해야 한다는 주
장이다. (그런데 목회자의 고행은 가족의 고행을 뜻한다.) 평신도들은 믿음
이 연약해서 세상 흙탕물에서 덤벙대지만 성직자는 성직자답게(?) 살아야 한
다는 것이다. 평신도는 타락할 수 있지만 성직자까지 타락하면 평신도들은 누
구를 믿고 살 것인가?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 하나는 목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타락할 수 있다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책임을 목사에게만 지움으로써 평신도들 자신은 아무렇게 살아도 된다는 생각
이다. 이런 생각은 서양 중세교회에 만연해 있었다. 신부는 하나님 앞에서 평
신도의 죄를 사해주는 중보자 역할을 하는 제사장적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신부는
거룩해야 했고 또 거룩하게 보여야 했다. 사실 신부의 매력
이 여기에 있다. 주중에는 어떻게 살던 지간에 주일에는 신부가 거룩하게 단
장한 제단 앞에 화려한 의상을 걸쳐 입고 서 있으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임재
를 느끼게 할 만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렇듯 오늘날에도 교회는 목사를 성스러운 상자 안에 가두어 놓는다. 물론
목사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할 책임이 성도와 장로에게 있다. 성도들
이 기도와 격려와 필요한 물질로 후원하는 것은 목회자에게 꼭 필요하다. 설
교자로 유명했던 스펄젼 목사를 찾아온 손님이 물었다. “목사님이 설교로 유
명해 진 데는 어떤 비밀이 있습니까?” 스펄젼 목사는 그를 교회 지하 기도실
로 인도했다. 거기에는 성도들이 모여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스펄젼 목사
는 “여기가 우리 교회의 파워하우스이지요”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