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하나님의 은총, 인간의식보다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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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총, 인간의식보다 앞서”

김영규 목사·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모두 죄인이다. 사람이 자신의 양심과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만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단순하시고 무한하
신 모든 속성들에 합하지 못하거나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도 그 앞에 죄인
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더구나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주신 선물들을 이해하
지 못하여 바로 처신하지 못하고 거부하였을 때도 죄인으로 남아 있다. 

하나님 은혜 거부하는 것도 죄

아담의 경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가 그러한 것이었고, 이스라엘
의 경우 모든 율법이 그러한 것이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믿음으로 살 때만 
우리에게 복이 되는 줄을 모른 경우들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죄인으
로 여기시지 않으실 때만 죄인이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그런 죄인으
로 깨닫는 자로서 출발하였던 신자들은 기본적으로 어느 누구를 윤리적으로 
정죄하거나 멀리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더구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역 앞에 큰 죄인으로 깨달아 다시 시작한 자들이
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그런 죄인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결코 죄를 지
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사람이 죄를 지을 수 없도록 하실 
때만 죄를 지을 수 없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치요 힘이다. 그렇다고 모두
를 저절로 사랑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신자가 되었어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남아 있는 것
이 그런 사랑을 베푸는 데 여전히 방해가 되기 때문에 절대적 사랑을 행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사랑을 베풀려고 해도 거기에는 흠이 있기 마련이다. 
생각의 흠, 시간의 흠, 태도의 흠, 존재 자체의 흠 등 한없이 많다. 

여전히 죄인의 신분 남아 있어

그러면 ‘~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 왜 사람들은 스스로 책임을 느끼고 
공로의 조건으로 생각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스
스로 그 명령을 지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첫 인류의 조상들이 타락하였던 기
본적인 교만이다. 다른 한편 우리 자신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런 교만에는 인
간 존재 자체의 한계를 깨닫지 
못함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의 외부 정보는 밖에서 뇌로 간다. 그러나 의식의 지향적 행위는 안에서 
밖으로 향하고 있다. 그 때 지향적 행위는 그 자체를 보지 못하고 관심이 많
을수록 향하는 대상들에 그 초점들에 따라 확대 확장하는 방식으로 찾기 때문
에 더 제한적이다. 무엇인가 찾는 행위의 특성이 혼돈의 방향이 아니라 판명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들이 반복하여 지적한 인간의 치명적
인 오류들이다. 
문제는 그 지향하는 행위나 판명한 것을 향하는 것 자체가 비가역적이라는 것
이다. 모든 비가역성은 그 자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 특성이다. 그 특성이란 
모든 지각들의 정보들이 하나로 묶어 뇌의 전두엽과 만나는 띠이랑 공간에서
만 의식과 함께 항상 움직이는 그 지향적 커서의 자유와 임의성에 불과하다
는 것이 그 특성이다. 
우리 몸의 최대의 지각센서들의 핵심부분이지만, 치명적으로 그 의지는 자신
의 근저인 300 밀리초 전의 뉴우런들과 스냅스들의 활동에 대해서 지각하지 
못한다는 것과 그 커서가 움직이는 공간은 예를 들어 뇌의 시각화면이 아닌 
전두엽과 만나는 띠이랑에 제한적으로 움직이는 
커서라는 것이다. 따라서 뇌
의 표면에 뉴우런 손상들로 인한 정보들의 결여나 꼬임을 오류로 느끼지 못한
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식의 수동성의 근원이다. 
마치 깨고 잠드는 데 역할하는 뉴우런들의 스위치(flip-flop switch) 기능들
을 스스로 지각하지 못하고 잠에서 깨는 그런 순간의 수동성과 같다. 더구나 
안구운동이 없이 깊은 잠이 든 상태의 경우 뉴우런들의 활동이나 정보전달물
질들의 이동들에 대해서 느끼지 못한 경우나, 꿈을 꿀 때와 같이 안구운동도 
하고 의식의 지향적 커서가 있는 상태에서도 뉴우런들의 활동이나 정보전달물
질들의 이동들에 대해서는 전혀 지각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의식
의 경우에도 그런 영역에서 정보들의 전환방식과 이동들에 대해서 전혀 지각
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수동성의 특성이다. 

정보전달물질 상태조차 가늠할 수 없는 인간

세포 영역에서는 많은 인자들이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운동하고 있는데도, 그
런 운동들을 바로 지각하지 못할 때 그런 수동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행동하
고자 마음을 갖는다든지 능동적으로 행동하고자 할 때, 그 의식의 커서는 앞
서서 
형성되어 가고 있는 정보들이 이미 어떤 거시세계의 느린 운동으로 바꾸
어진 후이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총의 내용들은 눈으로 보지 못하
고 귀로서 듣지 못하며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은총은 항상 인간의 모든 의식이나 꿈, 생각과 행동에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