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신앙 없는 것, 가장 불행한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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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없는 것, 가장 불행한 기적”

김영규 목사_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력목사 

시간을 종종 숨겨진 공간적 차원들과 다른 차원으로 생각한다. 그런 공간이
나 시간처럼 우주 안에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찰하는 인자도 
그런 시간이란 차원과 분리될 수 없이 구별된 하나의 차원으로 고려되고 있
다. 우주 안에 어디로 가든 어디에서나 바라볼 수 있도록 우주차원이 창조되
어졌다는 것은 에너지나 힘이란 개념과 전혀 다른 개념이다. 

차원 개념 인식 높아져

오늘날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하여 그런 개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잘 증명
이 되었다. 공간들의 차원들이 수학적 차원들에 대한 개념(소위 플라톤-데카
르트주의)이 아닌 입자물리학의 차원들로 대체할 때조차도, 운동과 분리할 
수 없는 그 시간을 공간의 차원들에 한 차원으로 흔히 첨가하고 거기에 관찰
하는 자가 볼 수 있는 차원을 우리가 더 첨가할 때, 이런 마지막 첨가하는 차
원을 실제로 우주 안에 모든 점에 타당하도
록 첨가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래서 우주배경 복사 안에서 그런 차원이 정보로서 포함할 때도 그런 차원
이 우주의 혼돈의 근원인 임의성으로 첨가될 때, 현 자연은 피조물들이 우주
의 어느 곳으로 이동해도 볼 수 있도록 극미시세계와 극거시세계의 경계선들
을 유지할 수 있는 영원한 평형이 그 조건으로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에서 밖을 향하여 관찰하고 볼 수 있는 우주의 차원은 과연 진정 누
가 볼 수 있도록 창조되었는가를 물었을 때, 그런 첨가된 차원들은 훨씬 복잡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조물들이 안식하는 형식으로 항상 움직이는 모든 
감각의 지향점들이 멈추는 영역인 자연은 그 피조물들만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차원들만이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물론 우주는 다른 생명체들이 
볼 수 있는 차원으로 만들어 진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볼 수 있고 
다스리시는 차원으로 만들어 졌을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우주 차원

2005년 노벨물리학상은 오류가 없는 절대적 1 미터가 1 초안에 직선을 상징하
는 빛의 정확한 속도(299,792,458 미터)로 배분된 것 중 하나로 표준화할 수 
있는데 기여한 
자들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그 1 미터를 실제로 얼마나 작게 
쪼개어 측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나 1초를 얼마나 작는 단위로 쪼개어 측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아토 미터, 아토 초)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오랫동안 비판해 온대로 절대적으로 정밀한 길이나 시간도 의식의 지향점에 
의한 대상을 분할하는 경향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지금까
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데 가장 크게 방해해온 점이나 선, 수와 같
은 개념들처럼 공간이나 시간의 개념을 표상할 때 우리가 의식의 지향성 자체
의 오류와 판명성 오류와 같은 근본적 인간인자들에 얼마나 깊게 영향을 끼치
고 있는지를 그 노벨물리학상이 대표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어떤 이론도 이론을 표상하고 산출하는 자를 그 이론에 포함시킬 수 없듯이, 
시간이나 공간을 물질이나 물질의 운동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을 것이다. 우
선 자연에 있는 시간이나 공간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 
안에 있는 개념이나 표상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물질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시·공간

시간이나 공간에 대한 표상에 있
어서 아무리 빛이나 빛의 파장처럼 규칙적인 
운동이 그것을 대신한다고 해도 낮과 밤과 같은 주기와 같은 자연 자체 안에 
있는 다른 규칙적인 운동과 특별히 구별하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다. 물론 여
기에서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가 상을 잘못 주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오류들
을 인간이 얼마나 피할 수 없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의 극한개념들은 아직도 그렇게 너무 인간적이다. 인간의 호기심은 과학
의 창조적 힘이지만, 그 호기심이 멈추어야 할 곳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
나님을 믿고 그가 계시하신 그 일상용어들을 믿는 것은 그 호기심이 멈추는 
곳에서 믿는 것이다. 신앙은 우주의 기원처럼 기적이다. 믿을 수 없는 것도 
불행한 기적이다. 왜냐하면 누구도 스스로 그 기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
다. 그런 기적의 세계가 없다고 믿어야 하는 대로, 진정한 과학자가 되는 것
은 약간의 바보가 되어야 한다. 

우주의 기원처럼 기적 같은 신앙

텍사스 대학의 이론 물리학자였던 John A. Wheeler의 말대로 현대물리학자의 
위기는 어떤 물음을 물어야 될지 모르는데 있다. 남을 교묘하게 속이는 큰 범
죄자처럼, 자신
의 무지를 과장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인류들이 가
는 행보들은 무조건 앞으로 가야하는 바보들의 행진이다. 신자들이 그런 바보
들 중에 약간 더 나은 것은 창조자 하나님이라도 믿고 가는 바보들이라는 점
이다. 나는 그런 바보들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