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북경칼럼> 가깝고도 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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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북경의 살며 생각하며

가깝고도 먼 죽음

김북경 총장_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4년 전 9월 11일에 뉴욕에서 수천 명이 죽었다. 그 후로 아프카니스탄에
서, 아프리카 곳곳에서, 이라크에서, 스페인에서, 영국에서 사람들이 사람들
을 죽였다. 동남아의 해일이나 뉴 올리언즈의 참사는 자연의 폭력의 결과이
다. 현대 기술의 덕분으로 참사 현장을 TV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데도 느낌
이 별로 없다. 신경이 무디어졌나보다. 예수님은 말세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시지 않았던가?

그러나 옆에 있는 친구의 아들이 죽었을 땐 느낌이 달랐다. 지난주 우리 학
교의 조석민 교수 아들 세윤(21)이가 영국에서 갑자기 죽었다. 멀쩡하던 청
년이 아침에 깨어나지 못한 것이다. 검시관도 사인을 규명하지 못했다. 학
교 학생들과 교직원 모두가 놀랐다. 죽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
는 버릇이 있다. 인생은 하나님의 입김에 풀같이 마르고 꽃이 시들듯이 가버
린다. “왜?”라는 질문은 소용없다. 그
저 슬픔에 잠겨있을 뿐이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볼 뿐이다. 영광으로 나타나신 주님을.

아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하나님 아버지는 아시고도 남으리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아버지의 심정.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
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어찌하여 그저 멀리 계셔서 살려 달라고 울
부짖는 나의 간구를 듣지 아니하십니까?” 하고 부르짖는 아들에게서 얼굴
을 돌리신 아버지. 아들을 결국 죽음에서 살리실 것이라는 것을 아셨지만 아
무 죄 없이 죽어 가는 아들을 외면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상상
이 가지 않는다.

이 하나님이 바벨론에서 노역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신다. 이전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쁜 소식으로 위로하신
다. 인간의 죄에서의 해방과 구원은 아들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이뤄졌
을진대, 이것은 동시에 아들의 고난 못지 않은 아버지의 고통이 있었을 것이
다. 아니, 아들 안에서 아버지가 고난 당하셨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험
한 십자가는 험한 우리 인생을, 그리고 이해 못할 아들의 죽음을 당한 부모
의 안타까운 심정까
지도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목자같이 양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 4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