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경칼럼> “성공과 신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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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신실함”

김북경 목사|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총장

D.A. 카슨 교수는 자기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했다. 카나다의 어느 조그만 시
골 교회에서 일생을 바쳤다는 이유에서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예화가 있다. 
조그만 교회에서 몇 명 안 되는 성도를 데리고 목회한 목사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한 소년이 매주 목사의 설교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 소년이 바로 나
중에 유명한 스펄전 목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신실함을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우리는 언제부턴가 신실하기보다는 성공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하였다. 우리 
삶의 모든 활동을 수치화 함으로써 인생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게 제도화하
였다. 심지어는 아내가 집에서 하는 일을 돈으로 환산하여 정부가 보상하여
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시간이 돈이라고 하니까 그런 주장이 나올 만도 하다. 엄마의 가슴에서 흐르
는 젖이 사랑의 젖이 아니라 돈으로 환산되고 어머니의 정성어린 도시락이 
돈으로 계산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하기야 요새 도시락을 
싸는 엄마가 몇
이나 될까마는… 

사랑은 돈으로 환산될 수 없어

인간을 시간과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무엇을 생산하는 기계로 만든 것
은 아마도 산업혁명일 것이다. 그 결과로 성공이라는 개념이 생긴다. 성공이
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을 따 제치고 이기는 것이다. 그런데 성공은 결과
를 수치화 할 수 있어야 가부를 알 수 있다. 성공의 개념을 교회에 적용하
면 교회 성장학이 나온다. 이것은 미국의 자본주의, 특히 실용주의(존 듀이
의 Pragmatism)에서 나온 이론인 것이다. 
미국의 어떤 교회에서는 목회자의 연말 평가에서 한 해 동안 교회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통계를 가지고 따진다고 한다. 이쯤 되면 목사가 CEO가 된 것
이다. 런던한인교회에서 일할 때 서울에서 온 한 목사가 자기에게 설교를 맡
겨주면 몇 주 내에 헌금액수를 올려 놓을 수 있다고 장담한 적이 있다. 

교회까지 실용주의에 물들다니 

이런 방법론으로서의 교회 성장학은 자본주의라는 우상과 다를 바 없는 것이
다. 하나님은 제물(성공)보다 마음의 중심(신실함)을 보신다. “억울하면 성
공하라”는 말은 예수 믿는 자로서는 할 말이 못
된다. 오히려 내 발걸음이 
늦어지더라도 옆 사람과 같이 뛰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우리가 뛰는 마라톤
은 혼자서 일등 하는 것이 아니라 “말아톤”을 뛰어야 한다. 
이 글을 성급히 마치면서 시간의 노예가 된 나를 본다. 신문사 편집국장이 
이 글을 기다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