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계시’는 항구적 가치의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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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는 항구적 가치의 기준이다

김영규 목사/ 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지금 한국은 국민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서 내수 부진을 타개하고 일자리 창
출과 높은 고용의 질의 개선을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있다. 그러나 그 문제
는 단순히 한국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 미래사회 발전의 한계와 전반적 위기 
내용과 분리될 수 없는 문제라면,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가정파괴의 조건으로 여성과 자녀들이 가정으로부터 해방되어 고
부가 가치형 인적 자원으로 탈바꿈하려고 할 때, 잠정적으로 늘어나는 비정
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바꾸기를 원한다면, 그 대안은 미래사회의 기업발전
에 있어서 핵심인 노동시장이나 인적자원의 기능적 유연성을 신장하는 데 방
해가 될 것이다. 
그때는 역으로 모든 정규직을 비정규적으로 바꾸어 국가 전체 인적자원의 통
합적 관리체제로 바꾸어 가는 것이 더 거시적 경제의 대안일지도 모른다. 물
론 교육은 그 기능사회를 위한 인적자원들을 양성
시켜야 할 것이고 한 인적
자원이 여러 전문적 직업 기능들을 수행할 수 있는 자로 변신되어야 할 것이
다. 

인적 자원의 전문화 예상돼

또한 늘어나는 사회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국가의 공적자금이나 시중자금이 
이윤을 창출하지 않고 흘러가게 하는 구조나 자금이 정체되는 구조가 계속 
되지 않도록 개혁도 거시적으로 조금씩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거기에 맞추
어 정부나 공적기관의 역할들도 대폭 사회전체 기능에 이관되어 공적자금을 
흡수만 하고 정체되게 하는 그 권력과 그 기능이 축소될 것이고, 국가적 서
비스 기능은 사회유동기능에 이관되게 될 것이다. 이는 실제적 불평등이 있
는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신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의 최고 통치기관이나 국가 안보기관도 자택 근무형으로 바꾸어지
고 나노시간에 따라 변하고 통합되는 미래 정보사회에 맞는 체제로 바꾸어져
야 할 것이다. 국회와 법적인 대의기관도 법의 제정이나 개정을 위해서 일시
적으로 소집하는 성격을 띠어야 할 것이다. 법에 의해서 사회기능을 질서화
하는 사법기관도 충돌된 가치들을 상대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게 하는 미래 과

학의 발전에 의해서 점점 약해질 것이다. 

약화되는 질서 구조 체계

가장 큰 대륙도 흡수해 버리고 극단의 이념대립도 흡수하며 국가 간에 경계
선도 없애버리는 그런 미래의 경제사회에서는 경우에 따라 고전적 어떤 국가
이념이나 민족사관에 의해서 구축된 국방무기체제나 안보체계는 가장 큰 국
민부담이 될 것이다. 
다국적 특별한 경제관을 가진 조그만 나라가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런 미래사회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가장 핵
심적인 요인이 무엇일까? 그것은 축적되는 과학적 사실들일 것이다. 그 사실
들은 미래에 지구를 어떤 탈출구로 몰아세울지도 모른다. 
그때에도 교회는 그런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죄와 같은 인간 인자들
은 여전히 최고의 요인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거의 모든 종교적 
정신들은 사회 전체적 기능에 의해서 흡수되어 사라질 것이지만, 기독교 가
치들은 더 커 갈 것이다. 사실은 그 사실이 항존적으로 남아 있을 때 진정
한 사실이다. 

부각되는 항구적 가치

최근 입자물리학의 경우 물질의 근원과 관련해서 입자의 개념이 사라질 위기
r
에 와 있다. 일상적인 전자의 개념을 포함하여 전 과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과학에서는 비과학적 사실들의 축적이 핵심인데 그 축적된 
사실들은 더 근본적인 사실에 도달하게 되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 
극한 속도의 세계나 극한 온도의 세계는 많이 이해되어 가고 있지만 극한 진
동의 세계는 아주 초보적이다. 그런 극한세계가 인간에게 혼돈으로 나타나
면 나타날수록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는 그 의미가 커져 갈 것이고 따라서 하
나님과 더불어 모든 신학적 가치들은 한꺼번에 동시에 커질 것이다. 
지금은 화성탐사, 토성 위성탐사, 인간복제, 화석의 세계, 세속사회, 긴 역
사를 통한 거짓과 신화 세계의 발견 등에 의해서 기독교 진리에 대해서 도전
하고 있지만 그것은 허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뇌를 통해서 자연적 사실들
의 허상을 고발하고 있듯이 한 사실에 의해서 모든 사실들이 파괴될 때 그 
마지막 사실이 모든 사실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꿈은 좋은 말이 아니다. 미래에도 과거의 일상용어들이 재발
견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역사 속에 뿌

진 일상용어들은 모든 진정한 사실들의 영원한 경계선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