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하나님의 ‘자유성’에로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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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유성’에로 초대

김영규 목사/ 개혁주의성경연구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창조 사상은 기본적으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는 인식에 있다(히 11:3). 예를 들어 인간에게 미래
에 대한 예언이 가능하다는 것도 아주 신비로운 현상이다. 최근 물리학자 호
킹의 ‘불랙홀 정보패러독스’에 대한 자신의 입장 포기 선언은 물리학적 근본
론에 그런 신비로운 현상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선언이다. 그러나 
성경적 창조 사상은 거기에 더 신적 의지의 임의성과 스스로 존재하는 자(실
체) 아래 세 위격의 통일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 전제 내용은 자연 현상 뒤에 수 차원의 세계가 감추어져 있다는 말과 다르
다. 현대 물리학의 최신 이론들은 피할 수 없이 하나님과 같은 통일적 임의성
을 가정해야 할 위기에 와 있다. 현상의 인과론에 근거한 진화론을 고집하면 
할수록 이제 점점 더 물리학적 해석은 퇴보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 물질
이나 자연 
현상의 근원적 규칙이 결정적이면서 우연적 임의성으로 발견된다
면, 모든 혼돈 현상이란 근원적으로 보이지 않은 세계의 임의성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으로 보아야 할 위기에 와 있다는 말이다. 

위기에 처한 물리학

성경은 하나님 안에서 미래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 수 있고 과거에 대한 정보
도 하나님 안에서 알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은 스스로 피조물을 
향하여 계시할 수 있다. 에너지 보존 법칙도 하나님의 섭리 방식인 보존의 역
사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또한 루터 신학과 달리 개혁신학의 경우, 우주 
안에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이 거하는 지구 밖에 어
떤 장소를 인정하고 있다. 화성과 같은 하늘의 별에 생명체가 있었느냐에 대
해서 아무 말도 없다. 그러나 다만 하나님 밖에 절대적 무란 없고 하나님 안
에서 무로부터 창조가 설명되어 있다. 
쉽게 말하면 우주로부터 추론된 하나님이 아니라 계시된 하나님과 그 계시에 
의해서 우주가 설명되도록 요청받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역사로부터 
부활이 추론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이란 확고한 사실로부터 역사가 
설명되어 
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인식론도 그와 같이 믿음의 방식이다. 그것은 독
단이 아니라 우주에 대한 진정한 신비이다. 

역사적 사실로부터 역사가 설명돼야

우리의 지각들은 분명히 사실이나, 우주의 본질적 인식 수단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그 인식론은 지금의 과학적 인식론과 전혀 다르다. 상식이 이제 우주
의 근원 법칙에 고려되어야 할 내용이 된 것은 우주가 정보로서 이해되기 시
작된 이후이다. 즉 우주 안의 모든 현상이 우주의 근본법칙에 고려되어야 한
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서 인간의 경험적 직관에 근거한 상식만을 상식이라
고 표현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직관방식과 같지 않은 자연의 생명체들의 직관
방식들도 포함한 개념이다. 
인간의 지향적 초점만이 분할된 초점이고 판명성의 오류의 방향으로 가고 있
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지향적 초점들이 인간보다 더 분할된 초점
을 가진 경우가 있고 같은 판명성의 오류들에 근거하여 대상을 직관할 수 있
다는 말이다. 어떻게 인간이 잘못 판단하고 거짓말하며 범죄 행위를 하는지
에 대해서도 이제 우주의 열쇠를 푸는데 무엇인가가 역할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러한 한 상식이란 생명체들의 지각들의 확대된 경계선일 뿐이다. 일상용어
도 역사의 모든 보편인간과 만나는 경계선일 뿐이다. 아직 글자가 없고 언어
의 분할화가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지향적 초점의 선천적 분할화
의 능력이 이미 일상 용어가 이끌어 내는 표상방식에도 어느 정도 반영된다. 

상식이란 지각들의 확대된 경계선일 뿐

거꾸로 돌려 엄마의 몸으로부터 독립적인 아기의 몸 상태의 지표인 갓난아기
의 첫 울음은 지향적으로 혹은 언어적으로 분할화로 표현되지 않았을 뿐 모
든 문화의 근저가 함축되어 있는 첫 소리이다. 그것은 동물의 경우에도 마찬
가지이다. 인간에게 있는 속임이나 거짓말이 잘 인간화된 동물로부터도 어느 
정도 검증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도덕적 알레르기를 너무 절대화하면, 진정한 인간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윤리의식은 용서와 관용이 허용되어야 한다. 참으
로 사랑이 모든 허물을 덮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유성에로의 초대를 의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