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 칼럼> 첨단과학이 범할 수 없는 초자연 현상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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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규 칼럼>

김영규 목사/ 개혁주의성경연구소

첨단과학이 범할 수 없는 초자연 현상 영역

20세기 초만 해도 첨단과학이라 하면 상식의 몰락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지금
은 다르다.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지금의 첨단과학이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
로 가면 갈수록 그 혼돈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혼돈이 자연의 법칙이 되
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 각각 극단에서 나타나는 경계선들은 과거 존재론
적, 우주론적, 윤리적 신 존재 증명보다 훨씬 강력한 신 존재 증명의 영역이 
될 것이다. 
각 극단의 영역에서 차원이 다른 질서의 혼돈적 배후에 대한 우주의 첫 방정
식이 나오지 않고 오히려 계속적이고 끝없는 인자들의 개입이 증명된다면, 그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확고한 증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거시세계에 있
어서 모든 것이 풀려야 미시세계에서 하나가 풀린다는 원리가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초자연 영역 분명히 존재해

물론 지향성 자체와 판명성의 오류들로부터 
인류가 근원적으로 자유로울 수
는 없다. 미래 과학의 발전이나 문명은 그런 오류들의 적정선에 잘 머물러 있
어야 한다. 그러나 그 오류들로부터 오는 피해가 빠르다는 것은 인간테러나 
방사능 피해, 환경오염 피해보다 더 근원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류는 그
런 오류들로부터 오는 피해를 줄여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도시문화와 주거환경으로써 말끔한 기하학적 재구성을 피하고 가능하다면 자
연친화적이되 자연에 피해를 주는 에너지 사용을 조금씩 줄여 가야 한다. 다
만 깨끗함은 그런 오류들에 기초하기 때문에 자연친화적 환경일지라도 적절
한 정도에 있어서는 오류들도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자연 속에서 과학의 조화 찾아야

전통적으로 어거스틴 이래 우리 의식 속에 있는 지향점의 움직임을 가리
켜 ‘의지’라고 한다. 우리의 지향적 초점(의식의 커서)은 컴퓨터 화면과 같
은 2차원 표면에서 움직이는 커서나 3차원 화면에서 움직이는 시각 초점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외부 정보의 개입과 상관없이 우리 의식의 지향점은 항상 
움직이는 의지적 커서이며, 동시에 오감을 기점으로 하여 온 피부들을 따라 
암묵적
으로 찾는 지향점(tacit searching cursor)이기 때문이다.
시각 역시 단순히 뇌의 시상피질에 3차원의 색상 형상으로 뿌려지는 것이 아
니다. 시각은 눈 위의 이마 중심으로 호로그래프와 같은 3차원으로 뿌려지는 
인간투시 시각화면(Human Optical Display)안에 자발적 커서가 있으며, 그것
은 기억을 요구하여 끊임없이 표상들을 띄우면서 무엇인가 찾고 있는 지향적 
커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식과 함께 암묵적으로 끊임없이 찾고 있는 커서가 단순히 뇌세포들
이나 신경세포들에서 느끼는 정보전달물질들의 비가역적 흐름이라고는 할 수 
없다. 최근 신경과학의 연구 중에 관심을 끄는 것은 외부정보의 유입과 관계
없이 선행하여 의식이 계속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는 점이다. 

현상 인식보다 의식 앞서

세포 증식의 경우에도 염색체를 끌어들이는 두 극점이 세포 안에 생기기 전
에 외부로부터 두 극점을 유도하는 인자가 들어 와야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
다. 인공배양세포 증식의 경우에도 그런 인자를 포함해야 증식에 성공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과 관련하여 최근 한국의 황우석 교수팀이 성공한 체세포인
간복제의 
경우 비정상적인 방추사 출현의 원인과 세포분열의 분위기를 유도하는 인자들
에 대한 증거들이 실험의 실패와 성공의 과정에서 명쾌하고 충분하게 제시되
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또한 거시세계의 조작기술인 세포융합기술에서 한 세포 안에 있는 많은 단백
질 군들 사이의 정보 이동의 사회적 체계가 갖는 전인적 성격이 인간 지향점
의 초점에 의한 분할의 오류와 판명성 오류에 의해 생략되거나 무시되는 기술
적인 문제가 아직도 남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아직 풀리지 않은 세포융합의 신비

이런 기술적인 문제는 세포 자체가 갖는 재생력과 생명력에 의존하기에는 너
무나 많은 생명 경시의 치명적인 실패들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생식 복
제’는 금지되고 ‘치료용 복제’가 허용되어 있다 할지라도 실험 과학이 갖는 
세포 윤리학의 근본적인 문제는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와 동일하게 생기고, 동일하게 기능하며, 동일하게 대화할 수 있으나 영
혼이 없는 그런 체세포복제인간을 우리가 미리 예상한다면 앞으로 사회와 자
연의 혼돈 현상이 더 가중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