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리 장로님_이은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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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리 장로님

이은상 목사/ 수원노회

‘바둑에 심취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토요일 하루종일 그리고 새벽1시까지 
바둑을 두었습니다. 주일예배 기도순서를 맡았기 때문에 졸리는 눈을 비비며 
강단에 올라가 앉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바둑알이 눈앞에 아른거
리기 시작했습니다. 

장로님은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가다듬기도 하고 ‘이러면 안되지’ 허벅지를 
꼬집기도 했습니다. 기도시간이 되자 바둑용어가 뛰쳐나오려는 것을 가까스
로 참으며 겨우 기도를 끝냈습니다. 그리고 마무리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
으로 기도 드립니다. 그리고 장로님은 아멘 대신 ‘아다리’ 그랬답니다’. 

취미생활 자체가 직업인 사람들은(바둑기사) 예외이겠지만 취미생활이나 여가
생활을 잘 즐긴다해도 그 도가 지나치면 신앙생활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우
리는 몸으로 체험합니다. 

휴가를 잘 다녀와도 집에 들어오면 우리는 늘 ‘집이 
최고야’ 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여름휴가 뒤 수면장애, 피로와 권태감, 소화불량, 직장에서 꾸벅꾸벅 
조는 등 바캉스 증후군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최근 미국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 직장인 가운데 54%가 휴가를 다녀온 뒤 바캉스 증후군을 겪고 있는 것으
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잘 쉬고 많이 놀았는데도 불구하고 왜 휴가 전보
다 더 삶이 생생하지 못할까요? 

일반적으로 이러한 원인을 학계에서는 생체리듬의 파괴로 설명합니다. 인체에
는 생체리듬을 주관하는 ‘생물시계’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시상하부가 있습니
다. 대뇌 깊숙이 위치한 이곳에서 일정 시간마다 각종 호르몬을 분비하도록 
명령을 내리는데 수면과 휴식을 유도할 때는 멜라토닌 호르몬을, 그리고 활동
력을 높일 때는 코티손 호르몬을 분비하도록 하여 생체리듬을 조절한다고 합
니다. 이러한 규칙적인 호르몬 분비가 휴가기간동안 서로 뒤섞이거나 상반된 
작용을 하다보면 생체리듬이 깨져서 피로와 무기력증에 빠지고 불면증에 시달
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은 휴가증후군은 
시간이나 장소나 환경 등 외부적 요인뿐만 아
니라 내부적 요인 즉 생각의 변
화도 그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가와 오락은 우리의 육체뿐만 아니라 경건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생체리듬과 경건의 리듬과의 상관성의 실례는 매일 새벽기
도, 큐티, 성경읽기, 주일성수 등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새벽기도
의 경우 처음에는 힘들어도 훈련이 되면 자다가도 정한시간이 되면 벌떡 일어
나게 되며, 또한 잘하다가도 한 번 어긋나면 다시 회복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
음을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휴가증후군을 통해서 육체든 경건이든 훈
련의 유익을 강조하는 성경의 가르침이(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딤전4:8-) 진리인 것을 깊이 깨닫고 절제와 훈련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휴가증후군으로부터 신자가 배워야할 것은 일과 여가의 이분법적 
사고로부터의 탄력 있는 삶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일과 여가는 모두 
선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위해서 이 둘을 다 창조하셨
습니다. 일과 여가 중 어느 것 하나는 선하게 보고 나머지 하나는 악하게 보
는 경
향을 우리는 거부해야 합니다. 일과 여가는 서로 보완적이어야 합니다.

낙원생활이 나오는 창세기에도 사람들은 완전한 상태에서 동산을 지키는 일
을 했으며 십계명중 제4계명에서도 하나님의 창조리듬이 일과 여가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도 평가절
하 혹은 과대평가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일과 여가가 우상화되거나 반대로 
나태한 청지기적 삶인 권태로 빠지지 않는 균형적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일에 대한 거부감이나 여가에 대한 죄책감, 반대로 일중독중이나 오락광도 
신자가 버려야할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영역모두에서 우리로 하여금 
책임 있게 행동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노동가운데서도, 여가와 놀이와 휴식 가
운데서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탄력 있는 영적리듬을 습득해야 하는 것입
니다. 

한편 이러한 영적리듬은 완전하신 지혜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으신 하나님
께로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여가와 노동의 
현장에서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시62:1). 그럴 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
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둑판 앞에서는 아다리
를 그리고 신앙의 자리에서는 아멘을, 아니 모든 날 모든 곳에서 하나님께 영
광을 돌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아다리’라는 말은 ‘맞춤’이란 뜻의 일본어 ‘아타리’를 잘못 사용하는 말로 
버려야합니다. 單手라는 말로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