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배한다, 고로 존재한다_이은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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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배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은상 목사/ 동락교회

서양의 어느 가정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귀한 아들의 백일잔치에 아이의 친
척과 엄마의 친구들이 많이 몰려왔습니다. 모두들 아기엄마에게 축하의 메시
지를 전합니다. 여자고 남자고 잔치에 모이면 언제나 수다가 앞섭니다. 젊어 
보인다느니 집 장만하느라 고생했다느니 등등 이야기가 오고갑니다. 모두가 
축하분위기로 떠들썩한데 갑자기 그 중의 한사람이 불길한 듯 소리쳤습니
다. ‘그런데 아이는 어디 있지?’ 부모와 친구들은 아이가 있는 방으로 달려갔
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누워있던 침대 위에는 손님들의 외투가 가득 쌓여있었
습니다. 외투를 치웠지만 이미 아이는 숨이 막혀 죽어 있었습니다. 그 날의 
백일잔치는 정작 분위기만 떠들썩했지 주인공은 그 분위기에 눌려 죽음을 맞
이했습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이 예수님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
나 정작 주인공이신 예수님보다 캐롤집을 내놓는 가
수와 개그맨들, 다리가 미
끈한 산타아가씨들, 그리고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사색하는 쇼
핑객들과 대목을 보려는 상인들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 
날은 마시고 춤추고 흥청망청 세상말로 망가지는 날, 공식적으로 타락이 인정
되는 세속의 날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몸은 상할지언정 친구의 마음은 상하
게 하지 말자며 술 권하는 날, 결혼은 나중에 하더라도 사랑을 확인하자고 몸
을 권하는 날, 카드 빚은 늘지언정 가난을 티내지 말자고 선물을 강요하는 날
로 점점 타락해 갑니다. 

물론 교회는 다를 겁니다. 춥고 삭막한 겨울에 특히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
에서 서로 카드를 보내고 작은 선물로 즐거움을 나눕니다. 주일학교 어린이들
에게는 율동이 있고 젊은이들은 칸타타를 준비하고 연극을 올립니다. 모처럼 
하루를 쉬며 가족과 함께 보내기도 하고 이웃에게 온정을 베풀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가 아직 타락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날에 대한 주도권
입니다. 원래 12월25일은 로마에서 태양신인 미트라의 축제일로 지켜지던 이
교도들의 민속의 날이었습니다. 그것을 기독교가 A
.D 313년 이후 빌려(그리스
도의 탄생의 정확한 일시를 알 수 없어) 성탄절로 대체 사용한 것입니다. 그
러므로 초대교회가 그 날짜를 성탄절로 빌려온 배경에는 이교도들에 대한 기
독교의 승리적 상징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거꾸로 세상
이 기독교의 성탄절을 빌려 소비의 날로 세속의 날로 지키는 추세입니다. 즉 
주도권이 다시 이교도들에게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해야할 일은 이 날에 대한 주도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여기에는 영적으로 볼 때 성탄절의 의미를 무너뜨리는 마귀의 궤계가 있
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공격은 공개적이고 폭력적이기도 하나 때로는 비밀스
럽고 아주 미묘한 형태를 띠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시 마귀는 무력을 동원해
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처형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때로는 광명한 천
사가 되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거룩한 성탄절을 속되고 타락한 날로 
바꾼 것입니다. 마귀는 ‘성탄복(?)”을 입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
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고
후4:3-4). 그러므
로 교회는 마귀의 역사는 전쟁의 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축
제의 날에도 있다는 것을, 또한 성탄절이란 문화에 육에 속한 사람만이 아니
라 영에 속한 사람들도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탄
의 값진 의미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배한다 고
로 존재한다’라는 당당한 묵상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교회보다 
백화점이, 성도들보다 상인들이 더 기대하는 날이 아니라 죄와 허물로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 더 사모하는 날이 되도록 전도해야 합니다. 진짜 
성탄의 의미가 이런 것이라고 찬양해야 하며 설교해야 합니다. 성육하신 그리
스도의 말씀이 전파되도록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
다. 양보가 언제나 미덕은 아닙니다. 오히려 영적일 때 그것은 전투로 바뀌어
야 합니다. 상업주의에게 성탄절을 빼앗기고 향락주의에게 주일도 빼앗기고 
나중에 믿음의 후배들에게 뭘 전해주어야 할까요? ‘까짓 것 뭐’ 하지 마시고 
약간은 도발적인 성탄절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