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 웃고 울고_이은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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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에 웃고 울고

이은상 목사/ 동락교회

‘슛 골인! 골인!!’ 둥근 축구공 하나가 사람을 웃게 하고 울게 하기도 합니
다. 흑이 있으면 백이 있고 승리가 있으면 패배가 있듯이 월드컵에 따라 희비
가 엇갈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예술축구의 프랑스는 울고 블랙 구테타의 주
역 세네갈은 웃었습니다. 업무 종료와 함께 칼 퇴근하는 남편의 귀가시간에 
아내는 흐뭇해하고 아빠의 월드컵 시청으로 드라마 채널권을 빼앗긴 아이들
은 얼굴을 살짝 찡그립니다. 심야 재방송까지 챙겨보는 열성 팬들 덕분에 통
닭 등을 파는 야식업체들은 빙긋 웃고 반면 비디오 대여점이나 유흥업소는 울
상입니다. 가전업계나 스포츠업계는 날마다 ‘맑음’이지만 연설에 관심도 없
는 선거 유세장은 ‘흐림’입니다. 이런 명암의 갈림은 거대한 한국역사의 틀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50년 6월은 전쟁의 포화와 붉은 피로 산과 
들녘이 울었고 2002년의 6월은 축포와 붉은 유니폼과 응원의 열기로 나라가 
온통 불꽃 축제분위기입니다. 
슬픔과 환희, 이익과 손해, 불행과 행복이라는 
두 극단의 감정을 가져다주는 이 월드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어
느 편에서도 웃고 어느 상황에서도 즐길 수 있는 그런 분위기로 만들 수는 없
을까?’ 

그 방법은 이것입니다. 월드컵을 축제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축제
는 게임보다 즐기는 것입니다. 물론 이기면 좋겠지만 설혹 지더라도 경기를 
즐긴다는 자세로 보면 ‘이기면 영웅, 지면 역적’이라는 냄비근성을 버릴 수 
있고 그저 최선을 다한 것으로도 ‘잘했다’ 라고 박수쳐 줄 수 있는 여유를 가
지게 될 것이고 또한 승리주의나 상업주의로 전락하지 않고 진정 휴식으로서
의 스포츠가 될 것입니다. 

한편 크리스찬들은 어떻게 월드컵을 즐겨야할까요? 첫째로 지나친 경기시청으
로 경건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른바 월드컵 증후군에 
걸리지 않도록 시간관리에 성공해야합니다. 직장인들이 업무능률에 큰 지장
을 초래할 만큼 밤잠을 설쳐가며 모든 경기에 몰두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특
히 24시간 생산라인을 가동하는 공장이나 밤 시간에도 근무해야하는 군인, 경
찰처
럼 성도들도 특히 지도자들은 자신의 경건라인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
록 해야할 것입니다. 주부가 백화점 쇼핑을 갈 때 안목의 정욕을 이기기 위
해 살 물건의 목록을 적어 가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레 축구
경기에 넋이 빠지지 않도록 TV시청에 원칙을 정해놓는 것도 지혜로운 한 방법
이라 생각합니다. 둘째로 집중의 원리입니다. 어느 회사에서는 한국팀의 경기
가 있을 때 일을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수도 있기 때문에 전 직원이 함
께 경기를 보면서 응원을 한다고 합니다. 단결심과 능률을 기대하는 회사와 
같이 성도들도 축구경기를 시청할 때는 기도해야 하는데, 전도해야하는데 하
는 두 마음을 접어두고 아빠의 축구해설과 함께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가족화
목의 장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성도에게는 균형과 성
숙, 폭넓은 세계관이 필요합니다. 어떤 이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월드컵을 즐
길 수 있지만 노점상, 일용직 노동자, 장애인, 그 외 월드컵 때문에 생계위협
을 받는 자들은 축제가 아니라 고통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변분위기 파악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요즈음 신용카드범죄가 잇따르며 ‘범죄=신용카드’라는 등식이 알게 모르게 생
겨났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카드자체가 야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 이
상으로 소비한 것에 대한 후유증이랍니다. 마찬가지로 월드컵은 후진을 면치 
못하는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들에게 환희와 축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관계없이 마냥 빠진다면 ‘태만=월드컵’이라는 등식
이 성립될지도 모릅니다. 분위기에 푹 젖어 있다가 ‘아니 벌써, 여름성경학교
야!’ 하는 후회가 없도록 해야합니다. 새벽기도 등 경건을 인도해야하는 목회
자들도 파이팅 하도록 성도 모두가 세월을 아끼는 지혜가(엡5:15-17) 필요한 
6월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