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_이은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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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이은상 목사/ 동락교회

황토고개 너머로 헛기침 소리를 내며 소달구지를 몰고 가던 농부, 장작불 아
궁이에 걸쳐진 가마솥에서 메밥을 뜸들이던 아낙네, 동구 밖 논길 따라 개구
리를 잡고 새알을 꺼내던 개구장들이 지금은 어디에 갔을까요? 그들 모두 이
제는 수준급 도시에서 그런 대로 적응하며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냅다 무쏘의 액셀레터를 밟고 단숨에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곳, 꼭지만 틀면 언제라도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있는 곳, 단
지 내에 잘 마련된 로울러 스케이트장에서 곡예를 부리건, DDR과 같은 기계
를 파트너로 삼아 몸매를 가꾸어도 별 참견이 없는 곳, 그래서 아파트 문화
를 상급문화라 했나봅니다. 

안전하고 깨끗하고 좋은 학교와 비싼 집들이 있어서 젊은 부부를 비롯한 현대
들에게는 아파트 문화는 매혹적일 수밖에 없나봅니다. 그러나 아파트 문화는 
생활의 고급스러움이 있을지 모르지만 
삶에 있어서 지고의 문화는 아닌가 봅
니다. 옛 마을 공동체는 투박하고 싸구려 집이 있고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았어
도 서로 마음은 밀착하며 정다웁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파트는 정반대입니다. 공간은 매우 밀집되어 있지만 정다움은 멀리 
분산되어 있습니다. 이웃은 이웃이 아니고 서로 다른 사람입니다. 물과 위생
과 쓰레기 더미와 같은 기본문제는 물론 죄와 어둠, 사치와 낭비, 홀로서기 
라는 심리적 불안감등 거대하게 흐트러진 내면의 곤경들이 있습니다. 시골의 
신성함과 친절함과 평화스러움과는 달리 도시는 세속적이고 개인적이고 혼란
스럽게 늘 바쁩니다. 고운 선 없이 정렬되기만 한 아파트 층계, 다채로움이 
없이 획일화와 직선만 요구하는 생활공간, 물가고와 아침마다 짜증스러운 광
고물들… 

그럼에도 도시화는 역사의 방향이라고 우기면서 낡은 간판을 떼어내고 꼬불꼬
불한 길을 편다고 산자락을 자르고 야단법석을 떨면 어쩔 수 없습니다. 도시
는 언제나 부유하고 시골은 언제나 가난하다는 등식이 성립된다고 우기시면 
정말 할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옛고향을 떠나 삶의 균형을 잃고 독거하시는 
우리들의 
어머님, 귀향본능의 몸부림대신 담배만 뻐끔대시는 우리 아버지! 아
래층에 성질 고약한 사람이 이사를 오는 날이면 언제나 침묵으로 몸을 꼬는 
우리 아이들, 엘리베이터 안에서 같은 라인끼리 만나더라도 언제나 물 한 모
금 병아리처럼 하늘만 쳐다보는 우리 이웃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신도시 문화가 상류사회라고 꼭 말할 수 없는 것 같습니
다. 신도시에는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 말은 곧 형식적
인 교회와 형식적인 목회자가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도시에 오면 
여러 가지 생활고의 의무들에서 면제됩니다. 그런 것처럼 신앙의 의무도 면제
되는 것으로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는 말입니다. 의. 식. 주의 자유를 부여받
은 것처럼 종교적 자유를 부여받은 것으로, 돈을, 집을 거머쥔 것처럼 모든 
것을 거머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편리함에 잘 길들여진 것처럼 신자
의 경건은 백화점 셔틀버스처럼 그냥 돌고 돕니다. 

우리는 수준급 신도시의 거주자이지만 그 나라가 오기까지는 아직 순례자입니
다. 우리는 몇 평의 아파트 소유권이 있는 부자이지만 그러나 그 날이 올 때
까지는 아직도 
완전한 부유를 모르는 가난한 자입니다. 우리는 신도시 이주민
으로 새로운 생활방식으로 잘 살아가지만 날마다 우리에게 비쳐오던 달빛과 
햇살을 떠나서 살 수 없는 하나님을 의존해야만 하는 피조물들입니다. 

오늘도 봄 동산에 올라 깊은 내면의 골짜기를 파고드는 삶의 메아리를 듣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향긋한 흙 냄새 같은 온정과 재잘거리는 새들의 보금자
리 같은 포근함과 그저 획일화로 치달리지 않고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우는 
넉넉함을 찾고 싶습니다. 신도시 문화를 전염시키는 영향력보다 로마를 점령
시킨 복음의 영향력이 봄 노래와 함께 온 누리에 퍼지기를 기도합니다. ‘나
의 살던 고향은 아골 골짜기, 빈들이나 사막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