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정의 그리고 정치_문민규 목사

0
10

자유와 정의 그리고 정치

 

< 문민규 목사, 반석교회, 총회정책연구위원장 >

 

“독재자들이 이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정의 구현해야”

 

 

서양 중세 시대에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 중에는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저항하였고 그 결과는 개신교의 등장이었다. 그 이후 자유에 대한 갈망은 이 세상에 대하여 역동적 영향을 끼쳤다.

 

신자들의 신앙 자유는 세상으로 그 자체의 자유를 얻도록 돕는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그 영광은 세상이 그 자체로의 길로 발전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렇게 될 수도 있고 그것을 바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신앙의 자유 안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덤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 덤으로 주어지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정의로운 것으로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신자들이 인간을 짓누르는 모든 독재, 억압, 운명에 맞서 일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실 신자들은 본인은 물론이고 타인이 노예가 된다는 것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정의감을 발휘한다. 그리고 절망하는 그들, 인간에게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 그들 곧 정치권력에 노예 된 자들이나 경제 상태에서 노예 된 자들, 그리고 심리학적이나 사회학적인 예속 상태보다 더 미묘한 형태의 노예들과 항상 함께 해 왔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된 것은 하나님의 경륜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해방자로 등장하셨기 때문이다. 그 이후 구약에서는 희년의 선포가 있었다.

 

희년은 이스라엘에서 전 경제와 사회적 개정인 소유, 채무, 대여, 변재, 그리고 실제적 노예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 계명은 재확인 되었다.

 

이 땅 오신 예수님의 첫 일성은 “가난한 자들에게 선포하신 복음”과 “주의 은혜의 해” 곧 ‘희년’ 선포였다. 이 ‘은혜의 해’ 선포는 오늘날 법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예속 상태를 포함한 것으로부터의 해방이며 모든 신자들이 이 자유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세상의 정치란 인간의 자율성과 그의 반역과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하려는 인간의 교만한 시도를 확인해 주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신자들은 정치에 대해 바른 역사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역사의 주체이기도 하다.

 

무엇이 어떻게 기록되는 것에 따라 신자들로 인하여 이 땅에 전개된 덤으로 주어진 정의로운 것은 정작 복이 될 수도 있고 부끄러움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정의로운 것을 빼앗고자 하는 세력은 세상에 늘 존재하고 있다. 그 중에서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 정치를 독재정치라고 한다.

 

그런데 아직 그 독재정치로 인한 고통들이 잊히기도 전에 독재자의 자녀들이 다시 정권을 잡는다면 모두에게 부끄러운 역사를 강요하는 것이 될 뿐이다. 그리고 국민들이 독재자의 자녀들을 아무런 의식 없이 그대로 수용한다면 그것은 독재정치를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권만 추구하여 자칫 부끄러운 역사를 쓰게 된다는 점이다.

 

독재자의 자녀가 집권해서 국민들에게 좀 더 나은 생활을 제공하는데 공을 세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좀 더 나은 일상의 생활은 어느 한 정치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진정한 국민의 복지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경륜에 따라 그 민족이 얼마나 공평과 정의를 추구하느냐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반면에 국민 스스로가 공평과 정의를 외면하면서 복지를 덤으로 얻으려 한다는 것은 사악한 발상일 따름이다. 이미 우리는 지난 몇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그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우리는 일제 치하 때부터 여러 번 독재정치를 경험했다. 그 피해와 후유증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우리에게 남아 있다. 아직도 독재정치로 인해 받은 고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들에게 진정한 사과와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정의로운 사회 구현이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우리가 신앙의 자유를 추구하듯이 고통 받는 그들에게도 자유가 구현되기를 소망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자유와 덤으로 얻은 정의로움으로 인해 다시는 독재자나 매국노가 이 땅에 발붙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