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름 빠름 빠름’보다 ‘바름 바름 바름’
< 전상일 목사, 석광교회 >
“우리 사회는 급성장문화의 폐해 혹독히 치르는 중”
서울과 부산을 기차로 1시간 30분대로 오갈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고 합니다. 순수 국내기술로 만들어진 차세대 고속열차(해무-430X)가 얼마 전에 시운전에서 시속 354.64km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것뿐입니까? 대한민국의 광통신망 네트웍이 세계 최고이자 보급률이 가장 빨라, OECD국가 중 1위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이런 소식이 전해져도 이젠 그다지 기쁘지 않습니다. 시대를 목도하면서 오히려 깊은 우려들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속도경쟁이 세상을 급속도로 바꾸고 있습니다. 남보다 빨라야 이길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빠름 빠름 빠름’을 광고 카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더 빠르고 더 먼저 접속해내면 ‘성공’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그에 따른 보화(寶貨)가 대가로 주어집니다.
과정이 어떻든지 간에 빨리 목적을 이루면, 불법이라도 정당화되며 오히려 박수를 치며 그것을 배우려 몰려듭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이런 급성장문화의 폐해를 혹독히 치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을 바라보면서 염려의 마음을 보내던 중, K일보에 실린 김관선 님의 글, ‘빠름과 바름’이라는 글에서 마음의 베임을 당했습니다. 김관선 님은 짧은 글에서 작금(昨今)의 교회와 목회자들에 대한 깊은 염려를 내비쳤고, 교회가 아마 이런 세상의 흐름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는 집단이 아닌가를 지적했습니다. 참으로 때에 적절한 비평(批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속적 속도경쟁을 부추기는 흐름 속에서 교회성장의 부담감이 뒤따라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목회자들은 어떻게 하든지 다른 교회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싶어 하는 강박관념이 무거운 짐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다보니 성경이 지시하는 방향을 벗어나기도 합니다. 빠르긴 한데 바르진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갓 부임한 목회자에게나 처음 신도시에 교회를 설립한 목회자에게나 선교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괴물이기도 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실적 때문에 ‘바름’을 포기하는 일이 다반사이기도 합니다.
어느 덧 우리의 언어 속에는 빠른 교회 성장을 기적이라고 말하고 부흥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바르게 왔는지를 아무도 물으려하지 않습니다. 마치 바르게 가기위하여 늦은 사람들을 무능하다고 보는 시각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빠르게 가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많은 군중들을 만나, 더 많은 일들을 하실 수 있었을 텐데 때로는 느리게 사마리아 땅으로 통과해서 한 여인을 만나주셨고, 굳이 여리고로 들어가셔서 삭개오 가족과 느긋할 정도로 ‘1박 2일’을 보내셨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사실 빠른 성공자들보다, 바른 실패자들을 만나보길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 교단도 어느 새 빠른 도약이 눈에 들어올 정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잰 걸음을 하고 있는 여러 모습들이 각종 행사들과 군상(群像)으로 보여 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혹시 빠름의 뒤안길에 부작용이 생겨나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은 돌아볼 때도 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바름 바름 바름’을 노래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바른 신학’의 모토를 가지고 뒤늦게 쫓아오는 소자(小子)들에게도 ‘바름’에 대한 격려박수를 한 번쯤 쳐 줄 수 있는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주님은 ‘빠른 성공’보다 ‘바른 실패’를 더 가치 있게 여기시지 않을까도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분명 ‘빠름’과 ‘바름’은 공존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어느 한 쪽에 힘이 실려야만 제대로 자리를 잡을 것 같습니다. 이젠 ‘바름’을 보여줄 때입니다. 타 교단을 향해서, 남을 향해서 지적을 할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개혁교회와 목회자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개혁보따리를 짊어지게 하셨다면, 우리가 먼저 ‘바름’의 가치를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야 정치도, 경제도,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바름’을 위해 지불해야 할 값과, ‘빠름’을 한 번쯤은 과감히 포기하는 진정한 개혁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젠 ‘빠름’보다 ‘바름’을 노래할 때입니다.
요즘에 와서 부쩍, 용산역에서 비둘기호를 타고 부산진역에 9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던 그 때, 그 수학여행이 몹시 그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