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를 쳐줄 수는 없을까?_유영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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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를 쳐줄 수는 없을까?

 

< 유영권 목사, 빛과소금의교회, 충남노회장 >

 

 

“속을 줄 알고 믿는 것이 아니라, 잘 하리라는 마음으로 믿어주길”

 

 

주변을 돌아보면 요즘 우리 주변은 온통 불신의 사회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종교 단체도 그렇고, 국회도 그렇고, 하다못해 작은 사업장도 그렇다고들 한다.

 

P 축구선수는 축구에 전념하고 때가 되면 현역병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한단다. 최근에는 제19대 국회가 개원되었다. 새로운 공약들을 쏟아 냈고, 많은 것들을 고쳐서 해보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럴 때에 박수를 쳐주면서 잘해보라고 격려를 하면 좋으련만 대체로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

 

군입대를 미루는 소식에 특혜니, 편법이니 하면서 불평과 불만 그리고 비난의 글들이 쏟아진다. 결국 공식 기자회견을 통하여 다시 한 번 군입대와 관련하여 자신의 계획과 의견을 피력하였다. 반드시 입대하겠다는 것이다. 현역병으로! 그러나 반응들은 여전히 시큰둥하다. 때때로 응원하는 글들이 올라오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다.

 

새로운 국회가 개원하는 시점에 국회의 기능과 관련하여 국회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에 비하여 누리는 특혜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쏟아진다. 결국 여야 할 것 없이 받고 있는 여러 특혜를 포기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잘하라고 해서, 특권을 내려놓으라고 해서 내려놓겠다는데 잘한다는 격려보다는 약속을 이행하겠느냐, 믿지 못하겠다는 소리가 다수다. 어쩌란 말인가? 잘하라고 해서 잘 해보겠다는데 믿지 못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불신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생기는 결과물이 아니다. 약속남발과 약속불이행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누적되어 쌓임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수가 믿을 수 없다고 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속아온 시간에 비례하여 불신은 깊게 나타난다.

 

이러한 불신은 그나마 사회가 가지고 있는 능력마저 저하시킨다. 그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며, 결국 미래에 대한 투자를 불가능하게 한다. 불신 사회의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불신이 가득 찬 사회의 미래는 없다.

 

목회자의 길을 시작할 때 많이들은 이야기가 있다. 성도를 믿으면 안 된다는 충고였다. 아마도 성도들을 부정하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믿은 성도들로부터 받은 배신에 대한 경험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를 시작하면서 성도들을 믿겠다고 다짐하였다. 혹 배신을 당한다고 하여도 믿겠다고 다짐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있지만, 찍으면 찍히겠다는 각오로 믿자고 결심하였다. 성도들을 믿었다.

 

그리고 나서 선배들의 충고대로 여러 지체들이 믿음에 발등을 찍었다. 찍힌 발등에서 피가 흐르고,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충고를 무시했던 결과이다. 하지만, 성도를 믿겠다는 나의 각오는 변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면 몇 번이라도 찍히고 밟히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믿으라 하면서 믿지 못하는 것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믿음의 결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믿음의 결실이 쌓여가기 시작하였다. 장담할 수는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함께하는 지체들을 통한 위로와 격려 속에 사역을 감당하게 해주시고 계신다.

 

사람들은 여전히 실수를 한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그래도 안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하겠다고 하면 박수를 쳐주어야 하지 않을까? 자식들을 키우면서 얼마나 많이 속는가? 속이는 줄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는 것이 부모들이 아닐까?

 

그럼에도 자식들이 잘 해보겠다고 하면 믿어 준다. 속을 줄 알고 믿어주는 것이 아니라, 잘 할 것이라고 믿는 마음으로다. 이런 부모들의 믿음이 자식들을 본래의 자리에 있게 한다. 결국 불신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은 믿음이다.

 

사회는 불신 속에 믿지 못하여도, 교회만큼은 믿어주었으면 한다. 또 다시 속았다고 땅을 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다시 한 번 믿어 줄 수 있는 곳은 교회밖에 없지 않을까?

 

누구라도 잘해보겠다고 하면 박수를 쳐 줄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