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신앙_김병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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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신앙

 

< 김병기 목사, 송파제일교회 >

 

 

“믿음은 환경으로 주어지는 세상의 유혹 이기는 능력”

 

 

사람은 환경을 지배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환경이 사람을 지배하는 존재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다양한 이론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점차 사람이 환경에 의해 지배를 받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는 그래도 개천에서 용이 난다고 하는 말에 수긍이 가는 일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그러나 이제 개천에서는 미꾸라지도 살지 못한다고 한다. 언젠가 서울대에 들어간 학생들의 가정환경을 조사한 통계가 발표되었는데 서울, 그것도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는 강남 학생들의 비율이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였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러한 결과는 환경에 의해 학생들의 성적이 결정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것 같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맹모삼천지교라는 관습을 기억하며, 자녀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허리가 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떠한가? 우리의 신앙생활도 세상이 흘러가는 경향을 적지 않게 받고 있는 것 같다. 적지 않은 신자들이 지금보다 좋은 환경이 주어진다면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실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좋은 환경에 있는 사람이 마음만 있으면 신앙적 명분이 있는 일들을 더 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신앙생활하는 환경을 바꾸어 달라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인 경우도 없지 않다.

 

물론 연약한 우리가 지금의 현실보다 더 좋은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의 환경을 복되게 바꾸어 주시면 하나님을 더 잘 섬길 것이라는 기대는 단순한 생각이다. 그러한 생각은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없다고 자랑하는 하나님을 향해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섬기리이까?”(욥 1:9)라고 도전한 사단의 주장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사단의 주장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소위 복으로 이해되는 좋은 환경을 주셨기에 욥이 그렇게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에게 허락하신 모든 좋은 환경을 빼앗아 버리면 하나님이 자랑하시는 그의 신앙도 결국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 드러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적으로 이해되는 모든 복을 빼앗긴 욥은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그는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에게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라고 고백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우리의 신앙이 결코 환경으로 주어지는 세상적인 복에 근거하지 않다는 것을 증거한 것이다.

 

여기에서 이 세상이 교회에게 좋은 환경을 허락한 적이 있었는가 되돌아보아야 한다. 초대교회가 황제를 숭배하던 로마제국의 치하에 있을 때 세상은 교회를 핍박함으로 교회를 대적하였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인정하고 국교로 삼은 이후에는 온갖 세상적인 유혹으로 교회를 타락시켰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이처럼 신자는 세상적인 고난과 어려움으로 이해되는 환경적인 불리함의 순간만 아니라, 우리가 신앙생활하기에 만족할 만한 환경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세상적인 유혹이라는 시험가운데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신앙은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세상적인 환경이 고난과 핍박의 형태일 때에나, 세상적인 만족과 행복이라는 유혹의 형태일 때에나 언제나 믿음은 환경으로 주어지는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죽은 물고기는 흘러가는 물에 떠내려가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죽은 신앙은 세상의 환경에 지배를 받아 떠내려가지만, 살아 있는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향해 세상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 5:4-5)는 말씀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