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본질 회복과 우리의 각오_나종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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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본질 회복과 우리의 각오

 

< 나종천 목사, 한사랑교회 >

 

 

“성공과 성장 욕망에 사로잡혀서는 교회 본질 세울 수 없어”

 

 

위키피디아라 불리는 인터넷 백과사전에 대단히 자존심 상하는 신조어가 한 개 등재되어 있다. 그것은 ‘개독’이라는 단어이다.

 

‘개독’이란 “처음에는 가치 중립적인 말로 개신교 기독교를 줄인 말이었으나, 1992년 이후 기독교를 비하하는 의미로 ‘개’라는 접두사를 붙여 타락한 종교라는 뜻으로, 한국 개신교 전체를 낮춰 부르는 말.”

 

‘개’라는 말은 일부 명사 앞에 붙여 ‘야생 상태의, 질이 떨어지는, 헛된, 쓸데없는’ 의미를 더하는 접두사다.

 

그래서 본질을 호도하거나 왜곡하는 함량 미달, 기준 미달, 품격 미달, 기대 미달의 것들에 우리는 ‘개’라는 접두사를 붙여 쓴다. 개똥참외, 개살구, 심지어 사람에 대한 욕설도 개로 시작한다. 그런 자존심 상하는 접두사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이 땅에 남겨진 크리스천들 앞에 붙다니,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할 말이 없다. 지난 한해 들려오는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소리들은 차마 귀를 열고 들을 수 없는 큰 부끄러움으로 가득 찬 한해였다. 이런 아픔들은 한국교회가 신학과 교리의 부제로부터 온 현상들일 것이다.

 

신학의 부제는 교회들이 하나님의 식보다는 자신의 식대로 살아가고 있으며, 목회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조국 교회에 가장 시급한 일이 있다면 교회의 바른 신학과 교리의 회복일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자기를 유일한 여호와로 알아주고 존중히 여겨 주기를 바라신다. “네가 나를 네 하나님 여호와로 존중히 여기느냐? 나는 다른 사람을 택하지 않고 너를 택했다. 택함 받은 네가 나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알고 있느냐?”고 말씀하고 계신다. “돈보다, 자식보다 네 사랑하는 그 무엇보다도.” 이것이 제사장 나라의 제사장과 백성들의 모습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끌려 다니시는 분이 아니시다. 자기 식을 고집하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하나님 식으로, 하나님 식을 따르고, 내 방식은 버리고 그 방식에 복종하는 것이지 내 방식, 인간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방식은 단 한 가지 희생의 죽음과 관계한 것이어야 한다. 죽음을 거치고 죽음과 관계 지워진 것이어야 하나님이 받으신다.

 

만일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생뿐이라면 실제로 우리는 절대적인 의미에서 또는 상대적인 의미에서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일 것이다. 절대적인 의미에서 불쌍하다는 것은 이생 외에 아무 것도 없다면 우리는 속은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인 의미에서 불쌍하다는 것은 이생뿐임을 전제하고 살아온 사람들에 비해 우리는 마음껏 먹고 마시며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먹고 마시고 싶을 때마다 정작 먹고 마시지도 못하면서 숱한 세월을 머뭇 머뭇거리며 주저하거나 죄의식을 느끼며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독교인은 가장 불쌍한 패배자가 될 것이다. 바울은 그런 우리들을 향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7-19)고 지적하셨다.

 

크리스천은 바로 ‘이생뿐임’을 강조하는 사상과 맞서 싸우면서 그것에 대해 ‘아니오’를 외치며 살기로 결단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그러한가? 우리가 외치는 목소리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 아니 외치기는 하고 있는가?

 

오히려 우리도 이 세대의 풍조에 휩쓸려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생뿐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가? 보이는 이생이 전부라는 생각이 이미 우리 속에 깊이 침투해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최우선적인 관심의 내용과 방향이 무엇인가? 파도처럼 끊임없이 우리 마음속에 밀려오는 욕심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지나온 삶과 목양의 현장을 돌아보며 본질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성공과 성장이라는 욕망에 사로잡혀, 이생의 기준으로 교회를 보고 평가하는 아픔에서 다시 한번 내 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식으로 살아가는 한 시대의 남은 자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