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시간_전상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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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시간

 

< 전상일 목사, 석광교회 >

 

 

“끊임없이 ‘내려놓는 일’이 진정한 개혁운동”

 

 

누군가 인생에 대해 정리한 글을 보았습니다. “인생이란 날마다 내려놓는 과정인데, 더 이상 내려놓을 것이 없어서 내 몸마저 내려놓는 것이 죽음이다.” 새겨볼수록 성경적 사고이며, 의미심장한 말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내려놓음’이 죽음에 대한 멋들어진 정리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회와 교회, 가정과 생활 전반에 대한 ‘크리스천 제일덕목’(第一德目)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다짐해봅니다.

 

최근에 모 방송사가 또 한 번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치부를 건드렸습니다. 심야에 그것을 시청하였던 성도들의 공분(公憤)이 대단한데, 불신자들은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갑니다. 얼마 전, 한국교회의 주목할 만한 교회가 여러 가지 불미스런 사건들로 매스컴에 오르내렸고, 그리스도의 명예가 실추된 때라 그 충격은 더 큰 것 같습니다.

 

이 시점에 우리가 방송사를 향하여 소송을 하고 투쟁을 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봅니다. 이젠 우리 자신의 내면의 적과 싸워야 하고, 어쩌면 이것은 위에 언급한 ‘내려놓음’의 결단으로 나아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마침 두 달여 동안의 새벽기도회 본문인 사무엘상을 마치는 시점이라, ‘내려놓음’의 덕목은 정말 절실히 마음에 와 닿는 것 같습니다. 31장으로 구성된 사무엘상은 결국, 사울과 세 아들의 죽음과 사울 정권의 몰락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사울 왕은 ‘기득권’ 곧 다윗에 반하여 ‘권좌 지키기’에 집착된 인생을 살다 죽었습니다. 평생 다윗을 내려놓지 못했고, 분노와 불안과 시기로 인한 편집증적으로 살다가 비참한 최후를 마치게 된 것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은바 된 종’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에 읽고 꽂아두었던 이용규의 책 <내려놓음>을 다시 곁눈질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내려놓음’의 주제는 새롭게 다가왔고 교회와 가정, 목회와 인간관계, 더 나아가 교단과 한국교회에 있어서 모든 문제는 ‘더 내려놓지 못한 이유’ 때문이라는 조심스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마 주님 오실 때까지 끊임없이 ‘내려놓는 일’이 진정한 개혁운동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내려놓음’의 성찰이 없이는 기독교가 세상 안에서 끊임없이 비판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교회’ ‘우리 목사님’ ‘우리 구역’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물론 공동체의 하나 됨을 강조한 말이지만 자칫하면 ‘주님의 거룩한 교회’가 높은 담장으로 둘러 친 ‘우리들만의 교회’로 전락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자성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목록들입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목회자의 중심에 그리스도의 심장보다 ‘성공한 목회자’와 소위 ‘폭발적 성장한 교회’에 대한 열망이 자리 잡게 되었고, 설교도 선포(宣布)라기보다 설득(說得)하고자 하는 감동 설교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진리에 틀리지 않도록 말씀을 전하려는 노력보다, 잘하려고 하는 방법론이 대세인 듯합니다.

 

제 자신도 어느새 더 이상 충심어린 비판의 소리에 귀를 닫아버리는 고집스런 망아지가 되어가고 있고, 하나님 말씀이기보다 자기 편견과 자기 주장이 주님의 음성으로 대체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우려감이 있습니다. 성도들도 힘겹게 쌓아올린 명예와 움켜 쥔 재물, 미래의 불안과 생명의 위험까지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내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과제들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교단과 노회, 지역 교회, 신학교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가장 시기적절하고 위대한 덕목인 것 같습니다.

 

우리 교단도 어느새 규모가 커지고 체중이 늘다보니 개혁을 위한 가벼운 발걸음이 힘겨울 때가 많습니다. 욕심과 자만, 혹은 개혁주의 이름아래 숨어버린 ‘우리만 올바르다’라는 생각을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아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내려놓음>의 책에서 이용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일하실 순간이 되었는데, 당신이 내려놓을 시간이다”라고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젠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바라시고 계시는 ‘더 많이 내려놓음’의 수고를 보여야 할 때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내려놓음‘이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결심’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