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도전할 새로운 인식전환”
< 남웅기 목사, 바로선교회, 경북노회장 >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교단 30주년 기념대회도 은혜 중에 마쳤습니다. 혼신의 힘을 쏟아 대회를 주관해 온 준비위원 여러분들께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또한 경향각지에서 모여들어 교단 30주년의 의미를 뜨겁게 가슴에 새기며 기쁜 마음으로 돌아간 우리 교단 모든 구성원들의 자발적이고도 헌신적인 참여 또한 감동적이었음을 밝힙니다.
그런데 아무리 화려하고 엄청난 규모의 대집회였을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만 행사였을 뿐입니다. 여기서 행여 우리가 큰 행사를 잘 치러낸 것으로 교단 30주년을 온전히 기념한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정녕 우리가 기념할 것은 행사자체가 아니라 그 행사를 통한 새로운 면모일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는 합신의 그 근본 정체성을 재확인해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의 행태가 잘못됨을 시인한다면 통렬하게 회개하고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금번 30주년 기념대회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일반적으로 사실 썩 공감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5년 전에 했는데 또 해?”라는 반응이 주류를 이룬 것은 지난 25주년대회가 성대하게 치러진 것은 맞지만 ‘이건 아닌데…?’ 하는 아쉬움이 묻어있었다는 반증 아니겠습니까? 행사 자체만으로 기념하고 끝나버린 뒤끝의 허무감이라 하겠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다른 점 중의 하나라면 돈이 아닌 그 무엇인가의 가치, 돈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의 능력과 감동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경험하고 그것을 입증하는 게 곧 교회의 사명이요 영광 아니겠습니까? 목회사역도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돈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만 돈 없어서 죽겠다는 어둠의 세상에서 진정한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합신의 태동이 한국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은 저들이 다른 이들보다 깨끗하고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내 던진 채 오직 ‘바르게 하겠다’는 사람들 중심의 모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선 사람만큼 중요한 게 없습니다. 이는 교회가 외형적으로 커져야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 자체만을 중요하게 여기지 다른 재산과 지식과 능력여부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세우실 때 그의 가문과 재산을 보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신만을 바라보는 약한 자를 불러주셨고 당신만을 노래하는 고독한 자를 세워주셨습니다. 오죽하면 하나님은 왕궁의 모세를 사용하지 않고 광야에 버려진 모세를 사용하셨겠습니까? 합신은 그 부름 받음에서부터 이미 기득권을 버린 십자가의 길이었기에 교계의 주목을 받았던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이 벗어난 것 같습니다. 작년 총회에서는 부총회장 선거에서 미조직 교회의 어느 목회자가 부각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용기가 대단하다는 이가 있었는가 하면 ‘장로도 없는 교회에서 총회장은 너무 심했다. 그래도 교회가 어느 정도는 뒷받침 할 수 있어야지’ 하는 이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지금은 사태가 더 심각해졌습니다. ‘그 분이 다음에 혹시 총회장이 되면 어쩌나?’ 하며 밤잠을 못 자며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대거 생겨났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교단 창피’라니 이 무슨 해괴한 망발입니까?
그 후보자가 그간 노회나 총회에서 보인 열정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다만 그 후보자가 섬기는 교회의 금전적 규모 때문이라면, 또한 교단 체통을 염려하는 견해가 주류를 이룬다면 이것이야말로 심각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방금 치른 30주년기념대회가 허망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든든한 배경이 아니라 충성된 사자를 세워 영광을 받습니다. 우리가 어쩌다가 이처럼 총회의 영광과 재정적 능력을 동일시하게 되었습니까? 가난과 약함을 부끄러워하면서 어떻게 주님의 십자가를 노래할 수 있습니까? 미조직 교회의 목회자일지라도 총회장으로 선출되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정말 합신만이 할 수 있는 한국교회의 개혁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그렇게 우리 교단 설립 30주년을 꽃피워보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