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_전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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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 전 현 목사, 화평교회, 총회서기 >

 

 

“요즘 오가는 말, 우리 시대 부패성 보여줘”

 

 

사람이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주된 방법이 말이며 그래서 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예로부터 화는 입에서 나온다고 하여 신중하고 교양 있는 사람일수록 말을 삼가야 하며 웅변보다는 침묵을 더 귀하게 여긴 것은 동양의 전통적 미덕의 하나이다. 그런데 누구나 다 느끼고 있는 것처럼 요즘은 말이 많은 시기요 말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매사에 중지를 모아야 하는 때인만큼 말이 많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말이 많으면 실언도 많게 마련인 것처럼 쓸데 있는 말만큼이나 쓸데없는 말도 많고 착한 말만큼이나 악한 말도 많이 나돌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개탄할 현상임이 분명하다.

 

말을 해야 할 때와 자리에서 꼭 해야 할 말을 한다는 것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생각보다는 어려운 일이다.

흔히는 때와 자리를 가리지 못하거나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아 말을 하지 않은 것만 같지 못하는 결과를 빚는다. 또는 상대방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데도 자기 기분에만 도취해서 떠벌리는 경우도 있어 차라리 침묵이 금이란 잠언이 잘 들어맞는다 할 것이다.

 

이처럼 말이란 하기도 어렵지만 그에 못지 않게 남의 말을 잘 듣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말은 혀로써 발성되지만 실은 두뇌의 운동이다. 생각이 없고 지각이 모자라는 사람일수록 더욱 더 떠벌리는 경향은 일종의 열등심리의 보상작용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말해야 할 때와 자리에서 할 말을 삼키고 침묵을 지키는 것은 금은커녕 은도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존과 겸손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한번 쏟아 놓은 말은 되담지 못하지만 말해야만 할 때 안 하고 접어둔 말을 두 번 다시 되찾을 길은 없다. 때문에 언제 어떤 말을 적절히 할 것이냐는 판단이야말로 명석한 두뇌의 활동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개개인의 지성과 인격의 결정을 용기와 슬기로 배출해내는 것이다.

 

말이란 서로 주고받는 상대가 있는 것이기에 회화나 대화는 일방적인 의사전달에 그치지 않고 서로의 인격이 나타나고 만나는 교류라 할 것이다. 새삼스럽게 풀이할 필요 없이 말이란 마음의 표현인만큼 그처럼 우리의 언어생활에 나타나고 있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말의 표현은 우리 안의 심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볼 때 개탄은 우려로 변하는 것이다.

 

얼마든지 곱고 부드럽게 할 수 있는 말도 일부러 거칠고 야하게 표현한다거나 칭찬하기보다 헐뜯는 말이 더 흔히 오가는 풍조는 심성의 황폐와 풍성의 저열화를 반증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우리는 우리나라와 우리 교회의 미래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희망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인터넷 안에서 “새끼! 죽인다”가 어느새 어린 아이들이나 어른들 사이에 오가는 흔한 표현이 되었고 걸핏하면 욕설로 퍼붓는 말들이 상투어로 되어 버렸으니 그래서야 어떻게 애정과 대의를 위한 관용과 화해가 이루어질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이상과 목적에만 연연했지 그 실천 방안에 대해서는 너무나 낭비와 허비가 많았다고 여겨진다. 말하고 듣는데 등한했다는 것이다. 진실만을 단순하고 소박하게 말하며 이를 곧이곧대로 듣는 관습이 자리잡히지 않는다. 간결하고 명쾌하게 묻고 답하는 버릇이 없다.

 

요즘 TV를 통해 듣고 보는 즉석 기자회견이나 이른 바 토크쇼나 대담 프로를 보면 어색하고 안쓰러울 때가 많다.

   

정치인, 연예인뿐 아니라 교역자와 성도들 모두가 말하는 기술과 방법을 익혀야 한다. 그것이 바른 생활을 건설하는 바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