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만, 적당히 합시다!”
< 변세권목사, 온유한교회, 강원노회장 >
참으로 아프고 슬픈 4월을 보내서인지 진눈개비가 심한 바람을 타고 오면서
봄을 시샘하더니 여기 저기에서 감기에 걸렸다는 소식들을 듣는다. 봄을 시
새운 겨울에 장난기였다고나할까?
지나친 자기 열심에
빠지기 쉬워
아무튼 벌써 낮이 많이 길어지고, 고양이가 쥐 잡는 일을 잊고 오수를 즐기
는 철로 접어든다. 냉이와 달래도 진작부터 시장에 나와 있지만 잦은 이상
기온으로 옛날같지가 않고 달래무침을 먹노라면 알알한 맛에 눈물도 나고 하
던 것인데 어쩐지 미각의 봄을 잃을 것만 같다.
사람도 그럴수가 없는 것이 어떤 일을 할 때 지나치게 열정적이거나 일방적
일 수가 있다. 왜냐하면 어느것 하나 인간이나 자연은 피조물이라 완전할 수
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신앙인들은 더욱 그러해서 신앙생활을 할 때에도 완벽하게 하려는 특성
들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확신과 분명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용서하는 것과
시간을 기다려주는 것을 잘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신앙은 옳고 완전한 것이
아니라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지켜가는 것이다.
박영선 목사는 신앙적으로 완전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성과 그
분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의 완전성을 알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완전하지는
않다”고 했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없는 존재다. 사람은 생활에서 어떤 여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람은 모든 것을 그렇게 잘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너무 일을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아울러 하나님
의 전체적인 뜻을 깨닫는데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란시스 드 살레는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을 이해하기가 쉽다고 믿었는데 그
는 “하나님의 뜻은… 그분의 행동과 명령을 통해 우리에게 이미 알려져 있
다. 우리 쪽에서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는 단순히 그분의 명령대로
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 밖의 모든 부분에 대해서는 완전히 자유롭게 우리
가 보기에 좋은 길을 택할 수 있다. 물론 가능한 일이라고 무조건 다해도 좋
은 것이 아니라 적절한 일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럴드 L. 싯처 목사도 “일단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을 고려하면 우리의 운
신의 폭이 넓어진다. 하나님의 뜻은 같은 목적지에 이르는 여러개의 길과 같
다. 그 중 어느 길을 택해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모든 대안이 선한 것
일 경우, 완벽한 결정을 내리려 하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일 뿐이다”
라고 했다.
나의 경우 나름대로 고생해서 많은 것을 준비해 놓고도 마지막 결정적인 순
간 하나님의 뜻을 최종적으로 살피지 못한 것을 여러번 후회하게 된다. 나
의 열심이 하나님의 열심을 앞선 것이다.
그래서 깨달아진 것이 신자로서 하나님 앞에 충성과 인내, 순종과 사랑의 원
리로 성실하게 살되 나머지는 약간만 적당히 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방법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판단하기보다 판단할 필요없이 가는 법을 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판단할 것이 많을수록 우리가 훨씬 실패할 확
률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것을 다 할 줄 모르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에 이 일을 하도록 부르신 것이다.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목회 사역도, 운동도, 말도, 그리고
그 외의 것들도 약간만 적당히 해서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이 하시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당(適當)이라는 말은 정도에 알맞음을 의미한다. 행여라
도 ‘적당히’를 ‘적당주의’로 착각해서 방종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될 것
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여분 남겨두길
우리 다시 한번 신앙인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지나친 고정 관념과 열심주의
에서 벗어나 여백의 부분을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약간만 적당히 일하면 그
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충분히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