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단상_허태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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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 단상 

< 허태성 목사, 강변교회 >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진 몇 가지 경험은 
일본 선교를 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일원으로서 나 자신과 한국사회와 한국교
회를 돌아보며 고민하고 회개하게 만든다. 

일본 방문 길에 느낀 소감 남달라

어느 날 아침 일찍 나는 조반을 먹기 전에 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생리적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하여 길 가에 있는 대형 마트에 들어갔
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지만 화장실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
침부터 물품 정리로 분주한 여직원에게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를 물어 보았
다. 
그 여직원은 환한 미소로 나를 쳐다보더니 자신을 따라 오라고 하면서 화장
실 입구까지 안내해 주었다. 그 표정과 태도가 얼마나 친절하던지 내가 무안
할 정도였다. 고마워서 몇 가지 물품을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오다가 이번에
는 길을 잃고 말았다. 
아무리 숙소를 찾아 가보려고 애를 썼지만 더 낯선 곳으로 
나는 가고 있었
다. 그래서 스스로 길을 찾을 것을 포기하고 애완견을 데리고 아침 산책을 
나온 40대의 남성에게 내 사정을 이야기하고 길을 묻게 되었다. 
나는 일본어를 못하고 그는 영어를 못하여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는 가던 길을 돌이킨 후 정 반대 방향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내가 찾으려고 
하는 그 건물이 보이는 곳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그에게서 조금이라
도 귀찮아하는 표정을 읽지를 못했다. 
몇 년 전 동경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어떤 선교사의 안내로 뉴스에서만 
보았던 그 유명한 야스꾸니 신사를 찾아가고 있었다. 일본에서 오래 사역하
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선교사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그래서 차창을 내리고 옆 차선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승용차를 향하여 
도움을 요청하였다. 거의 70대로 보이는 반백의 신사가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처음에는 몇 마디 설명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알아차리자 그 신사는 자신의 차를 따라오라고 하여 우리의 목적지 입
구까지 데려다주고 나서 중후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 주고 자신의 갈 길
로 갔다. 그
들이 얼마나 친절하던지 나는 감동을 받고 말았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어찌하여 저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낯선 이방인에게 저렇게
도 친절할 수가 있을까? 어찌하여 나는 은혜 받고 구원받은 신자요 목사임에
도 불구하고 저들이 가지고 있는 미소와 친절이 없는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나는 일본에서 날라 온 낯선 소포를 받게 되었다. 그것은 하룻
밤 머물렀던 동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의 한 호텔에서 온 것이었다. 
그 상자 안에는 작은 일본 과자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왜 그 호텔에서 나에
게 과자를 보냈는지를 곽근우 선교사를 통하여 듣게 되었다. 내가 투숙하였
던 그 호텔은 전통적인 일본 양식의 다다미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왠
지 불쾌한 냄새가 화장실 문을 열면 났다. 나는 단지 오래된 호텔이어서 그
런 줄로 알고 하룻밤을 보냈다. 
그런데 곽선교사가 내가 떠난 후에 그 호텔에 이런 문제가 있었음을 전화한 
모양이었다. 그 호텔측은 너무도 미안하다면서 한국으로 나의 주소를 문의하
여 사죄의 의미로 과자를 보내온 것이었다. 물론 그것을 단순히 고객을 놓치
지 않으려는 상
술이나 서비스 정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그것
이 그냥 단순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 저들은 저런 친절과 호의를 베푸는 것인가? 왜 피선교국가 사람들이 세계
에서 선교를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나라인 한국의 목사를 부끄럽게 하는 것
일까? 저들이 비정상인가? 아니면 우리가 잘못되어 있는 것인가? 
나는 오늘도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성화를 설교하는 목사이다. 우리나라는 
어디에서든지 눈을 들고 둘러보면 곳곳에서 십자가를 발견할 수가 있다. 일
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십자가 하나 찾기가 모래벌판에서 바늘을 찾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 
그들은 수많은 신사와 사찰과 귀신단지 속에서 산다. 그래도 우리보다 더 정
직하고 친절하다는데 아무도 이견이 없다. 얼마 전 부산에서 있었던 화재로 
인해 가족을 잃은 일본인들이 보여 준 침착하고도 절제된 모습도 나에게는 
예사롭게 보이지가 않는다. 

그들보다 우리가 더 밝고 친절해야

이제 우리도 기독교를 유창한 말로나 여기저기 십자가를 세우는 것만으로 드
러내지 말고 우리의 정결하고 사랑 넘치는 삶으로 보여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