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흥을 원하는 만큼 회개를 원하는가?_김기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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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_화성교회 목사

우리는 부흥을 원하는 만큼 회개를 원하는가?

교회마다 교역자마다 부흥을 원하는 마음은 간절하다. 그만큼 회개하는 마음
은 간절한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마음이 간절
한 만큼 자신이 변화되기를 그렇게 원하는가? ‘나는 더 이상 변화할 수 없
어’ 라고 생각하면서 여전히 세상이 변화하기를 기다리고 또 외치지는 않는
가? 1907년 부흥을 다시금 되새기는 마음이 간절한 것은 그만큼 부흥이 잘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회개하는 것도 미흡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회개 없는 부흥 있을 수 없어

사실 1907년 일어난 부흥에서 그때 성도들은 오늘날 생각하는 그러한 부흥
을 위하여 기도한 것 같지는 않다. 그 보다도 하나님 뜻을 거스르는 모든 죄
를 하나하나 회개하는 그러한 회개운동이었다. 운동이라고 하니 누가 일으켰
다고 생각하면서 그 어떤 한 두 사람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도 
부흥운동의 주동자가 되려는 공명심도 
작용한다. 1907년 부흥은 누가 먼저 
시작하였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나 그렇다고 그 어떤 사람에게 그 모든 것
을 돌리기는 무리다. 또 어떤 조직을 가지고 일으킨 그러한 것은 아닌 것 같
다. 
그러므로 어느 한 사람의 경건함으로 시작되었다고 하기보다는 그 시대 교회
의 영적 분위기가 회개의 분위기가 아니었는가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회개
를 앞장서 누구보다 철저히 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한 사람
이 회개했다고 다른 사람도 항상 따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역시 
회개 운동은 사람이 한 것이지만 사람이 일으킨 것은 아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회개 운동과 부흥을 위한 조직이 결성되고 또 흐지부지 
사라지는가? ○○뉴 스파크 운동, ○○영성운동 등 이름도 매우 듣기 좋은 
그러한 운동이지만 실제 회개는 미흡하다. 삶의 변화도 미미하다. 
지난번 정암신학 강좌에서 지적된 것 같이 부흥이란 구약시대 이미 있었고 
하나님은 그 시대에 복을 주셔서 이스라엘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다. 야곱
의 회개와 부흥으로부터 제사장 비느하스, 사사기 시대의 사사들을 통하여 
타락한 시대의 부흥, 왕정시대 나
타난 여호사밧, 히스기야 그리고 요시야왕 
같은 시대의 부흥 등등. 
그 시대 외치는 선지자들의 소리를 들은 왕들은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회개하
였고 그 회개는 온 나라에 전파되었다. 특히 왕이나 제사장 같은 지도자들
의 회개는 온 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선지자들은 그 시대 하나님의 심판을 
외쳤지만 대부분 왕들은 경시하거나 무시하고 핍박하였다. 결국 선지자의 말
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무서운 바벨론 침략과 포로로 이어지면서 그들은 눈
물로 70년을 보내면서 바벨론 강가에서 울었다.
우리는 부흥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회개를 먼저 원하신다. 우리는 형통을 원
하지만 하나님은 고치기를 먼저 원하신다. 하나님 백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
는데 하나님이 어떠한 복을 주시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회
개하지 않으면서도 부흥이 되기를 원한다면 이는 매우 그릇된 생각이다. 일
시적으로 부흥이 될지 모르는 그러한 부흥은 쉽게 꺼져버리는 거품에 불과하
다. 이 시대 회개할 것이 무엇인가? 내가 회개할 것은 무엇인가? 높아지는 
데는 마음이 앞서지만 낮아지는 데는 쉽게 시험이 든다. 초신자 때는 오히
려 순수하다가 오
래되고 직분이 더 중요한 직분일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해진
다. 
왜 그렇게 조직은 많은가? 왜 그렇게 회(會)는 많은가? 부흥을 위한 조직도 
참으로 많고, 영성운동의 조직도 참 많다. 개인적으로 하는 것 보다 단체로 
하는 것은 좋으나 문제는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한 회개와 경건한 삶이 보이
는가에 달여있다. 세상 사람들은 구원의 도리는 모르지만 나타난 삶을 볼 줄
은 안다. 그들 앞에 보이는 삶이 ‘아니올시다’이라면 어떤 운동이 제대로 
되겠는가? 
칼로 쪼개듯이 하나님 말씀으로 책망해 주기를 바라면서 막상 그러한 설교
를 듣거나 권면을 들으면 마음이 몹시 상하여 뒤틀리게 되는 것이 오늘날 사
람들의 마음이다. 심령의 만족을 원하면서 회개하여 경성하기를 원치 않는다
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까? 하나님이 은혜주시지 않는데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영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을까? 
‘○○심령부흥회’라는 이름이 60-70년대를 휩쓸었다면 지금은 ‘○○축복
대성회’, ‘○○ 컨퍼런스’가 판을 친다. 컨퍼런스란 말은 ‘집회, 연합회
의’ 등의 의미일 뿐이다. 집회라고 하면 촌스럽고 컨퍼런스 하면 신령해 보
이는 것
도 겉멋에 물든 우리들의 심령이 아닌가 싶다. 회개와 부흥은 그러
한 영적 환경이 이루어지는 때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TV 앞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기도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그래도 교회 나가 
앉아 있으면 세상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맑아지는 것이다. 우선 모이고 모
여서 다른 것보다 말씀을 듣고, 진심으로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고, 나를 바
라보고 회개하려고 애쓴다면 조금이라도 어떤 변화가 있지 않을까?

먼저 교회에서 말씀부터 들어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여 모이고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듣
고 전하고 회개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힘을 다해도 “이것뿐입니다, 불쌍
히 여겨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