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신해설 45> 행위언약_김병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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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언약<제7장 2항>

 

< 김병훈 목사, 합신 조직신학 교수 >

   

제7장 2항: “인간과 맺으신 첫 번째 언약은 행위 언약이었다. 그것 안에서, 완전한 순종을 직접 행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생명이 아담에게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그의 후손들에게 주어질 것이 약속되었다.”

 

본 항은 ①하나님께서 인간과 교제하시며 복을 주시기 위하여 맺으신 첫 번째 언약이 무엇인지, ②그것을 통해 아담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된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③약속된 생명을 받기 위한 언약의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해 교훈을 줍니다.

 

1. 하나님의 첫 번째 언약은 행위언약입니다.

 

행위언약이라는 말은 성경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2장 16-17절의 말씀,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에서 행위언약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계명을 아담에게 주심으로 아담에게 불순종할 경우에 벌을 내리실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아담의 편에서는 이 계명으로 인하여 순종하여야할 의무 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물론 16, 17절의 말씀에는 순종의 경우 아담에게 주어질 약속은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라고 말씀하셨으며, 창 2장 9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고 이미 말씀하신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담에게는 이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제외한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도록 허락이 되었으며, 그 가운데 생명나무도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16, 17절의 계명은 순종을 통해서는 생명이, 불순종을 통해서는 죽음이 있을 것이라는 상과 벌의 내용을 포함하는 언약적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특별히 순종을 통해 생명이 보상으로 주어지는 언약의 사실은 나중에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는 가운데 약속하신 레위기 18장 5절,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의 말씀을 통해서도 추론될 수 있습니다.

 

이렇듯이 순종을 통해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도 확인이 됩니다(참조, 신 27:26; 겔 20:11; 마 19:17; 롬 7:10; 갈 3:12).

 

행위언약의 존재를 드러내주는 성경의 증거구절로 호세아 6장 7절,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는 말씀이 종종 언급이 됩니다. 여기서 “아담처럼”이라는 표현은 포괄적으로 사람들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즉 사람들이란 본래 거짓되고 부패하여 언약을 맺어도 늘 깨기 마련이듯이 이스라엘도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고 반역을 하였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최초의 사람인 아담이 언약을 불순종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을 해서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또한 욥기 31장 33절, “내가 언제 다른 사람처럼 내 악행을 숨긴 일이 있거나 나의 죄악을 나의 품에 감추었으며”의 말씀에서 “다른 사람처럼”은 “아담처럼”으로 번역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앞서 호세아서와는 반대의 경우입니다만 설명은 동일한 경우를 보여줍니다. 욥 자신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감추듯이 하지 않았음을 말하는 구절인데, 이것은 아담이 자신의 죄를 감춘 것처럼 하지 않았다고 해석을 해도 무방합니다.

 

요컨대 호세아서와 욥의 해당 구절들은 아담이라는 단어가 최초의 인간을 가리키는 이름이면서 또한 사람 일반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이기도 하므로 두 가지 해석이 다 가능합니다. 따라서 아담과 맺으신 하나님의 행위언약을 직접적으로 입증하는 구절로 제한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을 가리키는 해석이 또한 여전히 가능한 만큼 행위언약의 입증하는 참조구절로 충분한 효력을 갖습니다.

 

2. 행위언약은 다음 몇 가지 점에서 은혜언약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은혜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은 구속주 하나님이시라면, 행위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만드신 만물에게 법칙을 부여하시고, 특별히 이성 있는 피조물인 인간에게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법도를 제정하시고 명하십니다.

 

또한 행위언약은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에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순전한 상태로 어떠한 죄의 영향도 받지 않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맺으시는 언약입니다. 언약의 대상자가 순전한 자라는 점에서 행위언약은 타락한 자를 언약의 대상자로 삼는 은혜언약과 서로 구별이 됩니다. 이처럼 타락하기 이전이라는 원시상태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법도를 그가 원하기만 하면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행위언약의 조건 아래서 아담은 다른 사람에 의한 순종을 전가받는 형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반드시 자신이 직접 순종을 함으로써 생명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은혜언약을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를 전가받기 위한 믿음의 언약인 반면에, 행위언약은 스스로 순종을 함으로 언약의 약속을 누리는 행위에 의한 언약입니다.

 

행위언약의 대상자인 최초의 사람 아담은 하나님과 아담 자신만을 위한 개인의 언약을 맺은 자일뿐만 아니라, 또한 자신 안에 있는 모든 후손들의 대표합니다. 즉 행위언약의 대상자로서의 아담은 하나의 개인으로서의 사적 인간(persona privata)이 아니라 공적 인간(persona publica)으로 모든 후손들을 대표하는 머리(caput repraesentativum)입니다.

 

3. 아담이 후손들을 대표하는 원리는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이 됩니다.

 

하나는 자연적인 연대(unio naturalis)입니다. 아담은 자신에게서 태어날 후손들에게 출생의 뿌리(radix)이며 또한 종자적 기원(principium seminale)입니다(행 17:26). 뿐만 아니라 아담이 모든 후손들을 대표하여 행위언약의 대상자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 되는 지위는 단지 그가 후손들의 자연적 뿌리이며 기원이라는 자연적 유대에 있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행위언약의 대상자인 아담이 또한 자신 안에 있는 후손들의 법적인 머리(caput forense)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자신의 후손들에 대한 법적인 대표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지혜로운 경륜과 섭리에 따라 아담을 그렇게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아담에 의하여 좋은 것들이 아담 개인에만 적용되지 않고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전달되도록 하셨으며, 또한 마찬가지로 나쁜 것들도 아담 개인을 넘어 모든 후손들에게 적용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아담이 행위언약의 대상자로서 모든 후손들의 대표자라는 사실은 아담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해서도 확인이 됩니다. 성경의 두 구절을 대표적으로 살피면,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범하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롬 5:14)는 말씀과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 15:45, 47)는 말씀들입니다.

 

이 말씀들은 아담은 온 인류에 대한 행위언약의 머리이며, 또한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역으로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이며 또한 둘째 아담으로서 아담이 행위언약의 머리이듯이 은혜언약의 머리이심을 교훈합니다. 아담은 흙에서 난 자이며 그로 인하여 사망이 왔고, 반면에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나신 분으로 살려 주는 영이시니 그로 인하여 생명이 온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담과 그리스도와의 유비는 아담이 행위언약의 대상자로서 모든 후손들의 언약적 머리임을 확고하게 지지합니다.

 

아담이 행위언약에 있어서 모든 후손의 법적 대표자라는 사실에 대해서 불평을 하며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를 테면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모든 인류가 심판을 받는 것은 공의롭지 않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반발을 하는 자들은 자신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은 채, 자신의 운명이 아담의 순종 또는 불순종의 결과에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불만과 맞물려 더욱 반발의 강도를 높입니다.

 

그러나 만일 아담이 행위언약을 성공적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선한 복들을 후손들에게 줄 수가 있었더라도 이러한 반발이 있었을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결과가 좋았더라면 아담의 대표성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대표성의 문제는 아담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주로 비롯됩니다.

 

 

4. 인류의 자연적 머리인 아담을 그의 후손들의 법적 대표자로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로운 뜻에 의한 섭리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이며 지혜로운 행사입니다. 그러한 작정과 섭리는 피조물이 거부하거나 불의하다 말할 수가 없는 하나님의 고유한 주재권에 속한 일입니다.

 

더욱이 아담이 행위언약을 순종할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모든 인류가 누렸을 행복을 생각한다면 설령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한 사망의 심판 아래 놓인 인류의 처지에 대해 안타까움과 또 그것을 넘어 불만이 있다고 할지라도 결코 그 불만 때문에 아담을 후손의 법적 대표자로 세운 하나님의 경륜을 불의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인류의 대표자로 행위언약을 맺은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순전한 상태로 지음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그가 원하기만 하면 죄를 범하지 않을 수가 있는 순전한 상태로 원시적 의와 거룩과 진리를 가진 자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행위언약의 순종의 의무를 지키는 일은 오히려 쉬운 일이었고, 불순종의 일은 아담 자신의 능력이나 상태로 보거나 아담을 둘러싸고 있는 복된 에덴과 창조 세계에 담겨 있는 환경은 행위언약을 순종하기에 대단히 유리한 조건이었습니다.

 

아담과의 연대를 빌미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불평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러한 상태에 있는 아담에게 행위언약을 통해 그의 후손들에게 지극한 복과 영생을 주시고자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송하여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한낱 피조물에 불과하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은혜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과 언약의 교제를 나누게 된다는 것 자체가 아담에게는 더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더욱이 그러한 언약을 성공적으로 순종할 수 있도록 거룩과 진리의 원시적 의의 순전한 상태라는 가장 최선의 조건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은 아담 개인에게서나 그 안에 있는 아담의 후손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은혜이며 복 누림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