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오늘날 교회에서 ‘예수의 제자’ 세움은 가능한가?_고경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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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에서 예수의 제자’ 세움은 가능한가?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시작하는 말

 

한국 교회에서 제자훈련프로그램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것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을 근거로 “제자를 삼음”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성경 본문을 그대로 살펴본다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제자를 삼을 것’을 명령하는 것이다. 이 본문으로 “제자훈련”을 함에 있어서 과연 누구의 제자를 삼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의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시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 ‘제자훈련프로그램’은 마치 ‘예수 제자 삼기’ 운동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만일 “제자 삼기”가 “예수의 제자를 세움”이라할 때에는 좋은 사명이나 사역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이와 관련해 과연 예수의 제자를 세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보다 분명하게 정의하지 않을 수 없다.

 

1. 예수의 제자를 세우려면 자신이 확실한 예수의 제자여야 한다.

 

사도 이후로 자신을 예수의 확실한 제자로 주장할 수 있는 사역자는 없었다. 그런데 작금 신사도 운동에서는 스스로 자기들이 예수의 제자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장에서는 현재도 사도가 가능하며, 사도와 동급이 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신사도 운동 추종자들은 가룟 유다 대신에 선택된 맛디아나 바울 사도처럼 가시적이고 모두가 인정할 만한 표징을 자기들도 가지고 있는지 답을 해야 한다. 과연 모두가 인정할 만한 표징을 신사도 운동 추종자들이 내보일 수 있을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바울 사도의 사도성은 당시에도 의심을 받았지만 사도들이 인정함으로써 사도의 반열에 서 있음이 확실하다. 반면에 마가, 누가,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인 야고보 등은 사도의 반열에 서 있지 않았었다. 성령의 영감을 받은 성경 기록자들조차도 사도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누가 감히 사도와 같은 예수의 제자라고 나설 수 있겠는가?

 

2. 예수의 제자는 오직 예수님만이 세울 수 있다.

 

예수의 제자인 사도들은 예수의 제자를 세울 수 있었는가? 사도들의 행적에서 “제자 삼음”이 사도행전에 등장한다. 하지만 이것이 곧 “예수의 제사 세움”이라 할 수는 없다. 문맥으로 본다면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사도를 따르는 그들은 “사도의 제자”가 된다. 그것이 예수님의 제자로 간주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로 간주되는 것은 예수님이 그들의 ‘선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의 제자는 예수 외에 그 어떤 누구도 세울 수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서울대학교 나온 학생이 서울대학교 졸업 자격을 줄 수 있다고 하는 허무맹랑한 주장과 다를 바 없다.

 

3. ‘예수의 제자에 담겨 있는 의미

 

예수께서 제자라고 선언하신 말씀이 있다(요 8:31-32). 곧 예수의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물면”된다(요 8:31). 그리고 “진리를 깨달아 진리로 자유로워야” 한다(요 8:32).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을 ‘제자’라 하지 않고 오히려 “친구”라고 하셨다(요 8:14).

 

그렇다면 제자들은 제자인가, 친구인가? 높은 목표는 친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자’나 ‘친구’ 모두 원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 결정권이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십자가에 대한 사랑에 대한 것이며, ‘예수의 친구들’도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보다 분명하게 증거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다. ‘예수의 제자’가 삼은 ‘제자’는 ‘예수의 제자의 제자’이다. 결국 ‘사도의 제자가 된 사람’은 ‘예수의 제자’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4. 목사가 예수의 제자를 세울 수 있는가?

 

교회는 사도의 제자를 ‘속사도’라고 했다. 그리고 속사도의 제자를 “교부”라고 했다. 교회는 이 ‘교부’까지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며 존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사도’나 ‘교부’들에게 ‘예수의 제자’라는 호칭을 부여하지 않았다. ‘속사도’나 ‘교부’는 ‘예수의 제자’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그들은 교회에서 탁월한 존경을 받는다.

 

그리고 교부의 뒤로는 ‘목사’를 세웠다. 이 목사들은 모두 동등한 권위를 갖는다. 잘 알다시피 종교개혁 이전까지는 이들은 ‘사제와 주교’로 불렸지만, 종교개혁 때 ‘미사’를 집례하지 않는 ‘복음 선포자’라는 의미에서 목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비록 목사 안에서도 차등을 갖고 있는 감독정치가 있지만, 장로교회에서는 목사는 모두가 동일한 목사다.

 

그러한 교회의 질서에서 ‘목사’가 ‘예수의 제자’를 세울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이 예수의 제자를 세울 수 있는가? 사도들도, 속사도들도, 교부들도 하지 않은 ‘예수의 제자 세움’이라는 행위를 목사나 그리스도인이 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 된다. 사도, 속사도, 교부들이 집중을 했던 일은 ‘예수의 제사 세움’이 아니라 오히려 ‘말씀과 기도에 착념하는 일’(행 6:4)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지금 목사들을 통해 계속해야 한다.

 

마치는 말

 

교회는 “예수의 제자 만들기”라는 헛된 프로그램에서 벗어나야 한다. 할 수 없는 능력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교회는 머리이신 예수를 믿으며, 위탁된 복음의 선포를 듣고 믿음을 이루는 곳이다.

 

교회는 만민이 구원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의를 위한 기도의 터전으로 삼아야 한다. 교회에서 선포된 복음을 존경하고, 선포된 말씀으로 하나가 되며, 그 믿음을 따라 정진하는 것이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이다.

 

이 땅에 완전한 교회는 없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의 피로 세워진 유일한 기관이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16)이며, 복음을 선포하는 곳이다(딤전 6:3).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자들은 다른 수단이 아닌 오직 바른 말씀을 선포하는 것에 착념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된 교회를 이룸에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