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통일의 저수지 되어야 _강경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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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통일의 저수지 되어야

강경민 목사_일산은혜교회

한국은 지금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해외에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
다. 선교 120년 역사가 이루어낸 경이적인 사건이다.
생각해보면 월드컵 4강의 신화보다 더 놀랍고 충격적인 기적이다. 신앙의 눈
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문화사적 안목으로 보더라도 한국교회가 이루어낸 
업적은 민족사의 쾌거가 아닐 수 없다.

놀랍게 발전한 한국교회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머지 않았다는 조짐은 여기저기서 분명해 지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가장 분명한 징조는 온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일이다(마 
24:14).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면 끝이 올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민족(지역)을 보면 대부분이 아시아지
역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의 복음화를 위한 주역은 누가 될 것인가? 섭
리의 비밀 앞에 인생이 겸손해야 한다는 대전제를 감안한다 할지라도 이미 나
타난 섭리적 결과로 보면 한국교회의 사명은 자
명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5000년의 한민족 역사에서 우리 민족공동체에 이처럼 뚜렷하게 세계사적 사명
이 부각되었던 때가 있었던가? 구속역사적 안목으로 볼 때 오늘날 한민족 공
동체의 번영은 선교 한국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요 복임에 틀
림없다.
한민족 공동체의 번영이 지속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뭐니 뭐니 해
도 민족의 평화적인 통일이다. 평화 통일이 민족 공동체의 번영을 담보하는 
최고의 관건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선교 한국을 위한 민족 공동체의 번영, 민족 공동체의 지속적 번영을 위한 평
화 통일, 평화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사명은 실로 지대한 것이다.

2. 70-80년대 한국교회의 통일 운동은 주로 선언적이고 이념적으로 진행되어 
왔었다. 이 시대 통일 운동은 정부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어 왔었기 때문에 
사회 각 분야에서 운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주로 반체제 운동을 했
던 진보주의 그룹에서 통일 운동이 시작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당시 반체제 운동의 핵심에는 진보 세력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의 통
일 운동 역시 진보주의 교회를 중심으로 이념적이고 
선언적인 통일 운동이 전
부였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정치 상황의 변화와 함께 통일 운동의 양상도 급격한 변화
를 겪게 된다. 이념적, 선언적 통일 운동은 이제 실제적인 나눔 운동으로 변
화된다. 이 과정에서 나눔의 힘을 가진 보수주의 교회가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이다.
지금 통일을 위한 나눔 운동은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다. 북한의 곤란을 살리
고 볼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북한의 열악한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일과 연계
시킬 것인가?
이 문제가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북한 인권 상황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북한 
인권 상황은 북한 사회의 지속적인 개방과 경제 성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지난 십 수 년 동안 우리가 경험한 귀중한 교훈이다.
그런가 하면 통일 운동은 정치적, 군사적 통일 이전에 문화적 심리적 통일이 
더 근본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땅의 통일이 아니라 사람의 통일
이 먼저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진 자의 겸손과 가진 자의 희생이 필수
적이다. 
누가 겸손과 희생의 정
신으로 나눔 운동을 계속할 수 있겠는가? 이 땅에서 누
구에게 그것을 기대하겠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고 본을 보
이신 복음 정신만이 평화 통일을 이루어내는 실천적 에너지임을 깊이 인식하
자. 

복음만이 통일의 원동력

한국교회는 정치적 격랑을 넘어 일관되고 꾸준하게 북한과 나눔 운동을 지속
시켜 감으로 평화 통일을 위한 저수지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해외 선교헌금
을 따로 하듯이 통일의 그 날까지 교회마다 생명줄 헌금을 따로 드려 통일 비
용의 오병이어가 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