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남북 공동선언_최성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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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남북 공동선언

최성대 목사/ 동산교회

제5주년 6.15 남북 공동선언(2000년 6월 15일)을 기념하는 6.15 통일대축전
이 평양에서 있었다(2005. 6. 14-17). 6.15 남북 공동선언 전문의 실현을 위
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첫째, 6자회담의 주변국에 의존(依存) 자세. 우리조국의 통일문제를 전적으
로 이웃에게만 의탁하는 자세는 주체성 없는 미숙한 태도이고, 과거 외세에 
끌려가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자세이다. 조국 통일과 평화의 밥상을 남이 
차려주기만을 기다리는 자세는 21세기의 신한국이 취할 자세가 아니다(사 
31:1; 36:6).

둘째, 주변국과 관계없는 남한과 북한의 독자(獨自) 자세. 이제 지구는 정치
와 경제와 인종과 언어와 지리와 문화를 교류하는 지구촌(global village)
이 되었다. 일반은총의 차원에서 지구촌은 한 혈통의 한 가족의 통일성을 이
루면서도 하나님이 정해주신 거주의 경계로 인한 민족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행 17:26). 한 민족을 넘어 일하시는 하나님 경륜
의 관점에서 보면(롬 
3:29) 민족적인 지향성은 좋지만 오직 한 민족의 일변도로 나아가는 민족주
의는 위험하다. 왜냐하면 민족주의는 이웃 민족을 배타하는 고로 국가분쟁
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통일과 평화를 우리의 힘만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한반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이상주의이다. 모든 만물
은 구별되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주변국가와의 친(親) 자세. 국제관계는 대립을 넘어선 ‘친’의 자세
를 취해야한다. 하나님은 남유다가 기울어지는 도탄 가운데 예레미야에게 
친 바벨론 정책을 지시하셨다(렘 29:4-7). 비록 과거 전범자와 같은 주변국 
일본, 중국, 소련과 친노선을 유지해야 경제와 문화 교류는 물론 동남북아시
아와 북방선교가 가능하다. 

그러면 어디까지 친노선인가? 일본과 중국과 소련과 협력하지만 협력할 수 
없는 장벽이 있다. 이것은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문제이다. 지금의 일본과 
중국과 소련은 복음이 약하다. 복음을 잘 수용하기 어려운 나라와의 친노선
은 상호보완적으로 어느 정도 유익하지만 본질적으로 한계에 부딪치게 된
다. 하나님의 친 바벨론 정책은 
바벨론의 복음화와 선민의 갱신과 안식을 위
해 잠정적으로 70년 동안(대하 36:21; 렘 24:5-7) 허용할 뿐 영구한 허락은 
아니다. 

넷째, 6.15 공동선언의 주체자로서 하나님이 사용하는 나라를 동반(同伴)하
는 초월(超越) 자세.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시고, 모든 한계를 초극(超克)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지도자와 백성을 통해 6.15 남북 공동선언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시 33:12). 하나님은 주변국을 사용하신다. 역사적으
로 보면 하나님이 미국을 사용하여 우리 민족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고로 신세대의 반미(反美)와 구세대의 친미(親美)의 자
세를 지양하고 용미(用美)의 동반자(partner)적인 초월자세를 유지하는 것
이 성숙한 중도의 자세라고 믿어진다. 

6.15 남북 공동선언의 한반도 통일은 우리 선조들이 소망한 것이다. 우암 이
승만 대통령의 실용적 친노선은 그동안 친미로 오해받고, 백범 김구 선생의 
이상적 독자노선은 반미로 오해받은 것 같다. 우리 민족을 위한 두 분의 애
국자를 한반도를 둘로 분리하듯, 우암과 백범을 분열시키는 이분법의 과오
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성숙한 
국민의 태도라고 여겨진다.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의 격동의 파도가 크기에 일엽편주의 배는 상하좌우로 흔들리는 한계를 
드러낸 것은 아닌가? 

기독교는 우리 북한동포를 품어야한다. 북한인권과 북핵개발의 폐지와 통합 
한국의 문제들을 심도있게 다루어야 한다. 동서독 통일의 역사적 사례에 비
추어볼 때, 한반도의 통일은 서로의 인격을 인정하고 문화와 정신의 동질성
이 무르익어 가면서 통합되는 점진적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과 무질서를 초래할 수 있다. 하나님이 사용하는 주변국
가와 협력하면서 미국을 동반자(partner)로 하는 하나님 중심의 초월자세를 
추구하는 것이 균형잡힌 온건한 자세라고 믿어진다(마 6:33). 평화 후 전쟁
의 악순환(욜 3:9-10)이 한반도에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6.15 남북 공동선
언의 한반도 통일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지도자와 백성을 통해 평화 한국
으로 지향되기를 기원한다(사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