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살려내기_정창균 목사

0
5

나라 살려내기 

정창균 목사/ 새하늘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에 속하여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궁
극적 관심은 영원한 나라에 있지 현실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
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현실에 대하여 관련도 없고 책임도 없다는 말이라고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정치와 교회의 관계에 대하여 개혁주의가 표방해온 탁월한 원리 가운데 하나
가 “정교분리의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교회는 정치현실을 떠
나 별천지에서 따로 뭉쳐 살아야 된다는 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습니
다. 교회가 현실정치와는 분리되어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정치현실과 분리되
어서 살수는 없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간 이스라엘 포
로들에게 하신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
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렘29:4-7). 원한과 복수
심으로 가슴이 미어졌을 원수 나라를 놓고 오
히려 그 성읍의 평안을 위하여 
힘쓰고 그것을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하시는 이 말씀이야말로, 하나님
의 백성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 세상에 대하여 얼마나 큰 역할을 감당해
야 할 책임이 있는지를 무섭게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만이 아
니라, 곧바로 우리 자신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데에도 직결되
어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이어지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소위 정치가들 가운데는 참으로 질과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많아
서 그들의 잘못된 정치 행위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많은 고통을 당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어떤 친구는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놓고, “우리나라는 
정치가들만 없으면 정말 살기 좋은 나라”라며 빈정대기도 하였습니다. 근자에
도 이 나라는 극심한 위기와 불안 가운데 처하여 있어서 모두가 걱정하고, 분
노하고, 또 이러한 나라에 사는 백성인 것을 서러워하기도 합니다. 나라가 망
해가고 있다고 탄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나라가 이 정도 되었으
면, 이제는 여기저기서 이 성읍의 평안을 위하여 힘쓰고 
그것을 위하여 여호
와께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이 개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교회 공동
체 차원에서 나타나기 시작해야 할 것인데, 너무나도 조용한 것입니다. 우리
와 상관없는 정치 문제라고 여겨서 무관심한 것인지, 각자 알아서 묵상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인지… 부활절 연합예배 광고와 홍보전단지는 돌아다니는
데, 과문한 탓인지 한국교회가 거 교회적으로 국난에 처한 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90년대 초반 큰 혼란 속에서 대 변혁기를 지나고 있는 한 나라에서 몇 
년 동안 산 적이 있었습니다. 남아공이었습니다. 당시 그 나라는 한창 백인정
권에서 흑인정권으로 넘어가는 대변혁의 과정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혼란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이 온 나라 사람들에게 팽배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
운 것은 많은 교회들이 나라를 위하여 조직적인 기도를 시작한 것이었습니
다. 

교회들이, 지금까지 기도하지 않은 것을 회개한다면서 전국적으로 낮 12시가 
되면 종을 치며 기도하는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몇 교회가 어떻게 참여했
는지 구체적인 상황은 
잘 알 수 없지만, 제가 나가고 있는 교회는 매주일 광
고를 하면서 그 기도운동에 계속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틀림없이 시민 전젱이 일어날 것이라면서 전쟁을 취재하려 왔던 많
은 외신 기자들이 평화롭게 정권이 교체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하며 돌아갔다
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정치꾼들이 망해먹는 나라를 신앙인들이, 아니 교회들이 살려내게 해주소
서!” 

“이 나라가 그 많은 시련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어떤 은혜를 받고 여기까지 온 
나라인데… 다시 한번 은혜를 베푸소서!” 

지난 주간에도 우리는 울먹이며 하나님께 애원하였습니다. 이제는 온 나라의 
교회들이 우리가 사는 이 땅의 평안을 위하여 조직적이고도 열정적으로 여호
와 하나님께 간구하며 일어나는 책임을 감당해야 할 시점임을 이 나라의 교회
지도자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