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교회 건설을 위한 두 가지 제안 _최덕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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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교회 건설을 위한 두 가지 제안

현산교회 최 덕 수 목사

2000년 정암 신학강좌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때 미국 신학교에서 가르
치다 국내에 들어오신 모 신학교 총장 목사님이 ‘한국장로교회는 순복음 장로
교회다’라고 말했던 적이 기억난다. 당시 이러한 지적에 필자는 동의하지 않
을 수 없었다. 과거에는 ‘장로교회’ 하면 장로교 나름대로의 분명한 색깔이 
있었다. 그러나 실용주의, 인본주의 사상이 교회 안에 점점 침투해 들어와 이
제는 예배형식이나 목회 프로그램만을 보아서는 이 교회가 어느 교파에 속해 
있는 교회인지를 도무지 구분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안타까운 일은 명색이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우리 교단 교회도 이런 일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사
실이다. 

물론 해 아래 새 것은 없다. 아무리 개혁하려 해도 온전한 개혁교회의 모습
을 갖출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개혁주의 교회의 이상과 실제와의 
갭을 줄이는 일은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 왜
냐하면 합신교단이 존재하는 이
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이상적인 개혁주의 교회 건설
을 위한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세례와 성찬을 바로 시행해야 한다. 이 이야기는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
니다. 칼빈이 말한 교회의 표지 중 하나가 ‘성례의 올바른 시행’이란 것 정도
는 목회자라면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세례와 성찬을 올바로 시행
하고 있는가?

일반적으로 한국교회는 봄,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세례식을 시행한다. 세례
를 주어 세례교인이 되게 하는 일은 한 사람을 영광스런 교회의 회원으로 받
아들이는 매우 중대한 일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교회들은 다른 양육훈련(전도
훈련, 제자훈련)에는 열심을 보이면서도, 세례 교육에는 별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화란개혁교회가 유아세례 교인이 입교하기까지 수 년 동안 매주일 세례교육
을 실시하는데 비해, 한국교회는 보통 한 두 달로 끝내 버린다. 이는 카톨릭 
교회의 영세 교육기간인 6개월에도 훨씬 못 미치는 짧은 기간이다. 이제 한
국 교회는 세례교인으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신앙지식을 구비하게 하
는 일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아울러 세례 문답도 엄격하게 시행해야 한다. 세례 문답은 세례 받을 자가 반
드시 알아야 할 구원의 도리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그리고 분명한 신앙고백
을 하는지를 테스트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대개 통과의례 혹은 붙
여주기(?) 식의 문답이 되기 때문에, 성도들이 세례 문답에서 떨어지는 경우
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세례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 비회심자가 교회 회
원이 되고 또 직분자도 되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역할
을 감당하는 일은 힘들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개혁교회는 무엇보다 세례를 올
바로 시행해야 한다.

성찬도 마찬가지다. 성경은 세례교인(입교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성찬에 참여
할 수 없다고 말한다(고전 11:27-28). 오늘날에는 성찬의 참여 여부를 신자
들 스스로 판단한다. 그러나 과거 개혁주의 교회들은 성찬을 앞두고 심방을 
실시해서 성찬에 대해 무지하며 믿음도 없이 성찬에 참여하려 하는 자들을 성
찬에서 제외시키는 선별적 성찬참여제도를 실시하였다. 이는 교회의 순수성
을 확보하기 위한 권징의 차원에서 시행된 제도로
써, 오늘날 개혁주의 교회들
도 수용해 볼만한 제도이다. 

두 번째로 개혁주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신앙고백서들을 사용해야 한다. 
어떤 분들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신앙고백서, 대소요리문답, 예배모범 등)
나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과거 종교개혁의 소산물이었지 오늘의 상황에는 
맞지 않다고 하면서, 성도를 세워 나가는 일에 있어 요리문답 사용에 회의적
인 반응을 보인다. 이는 기독교 문화적 자살 행위다. 이 시대에 종교개혁 당
시 만들어진 신앙고백서들보다 더 좋은 신앙고백서들이 있는가?

종교개혁 당시 선진들의 피로써 쓰여진 신앙고백서들은 교인을 성숙한 그리스
도인으로 세우는 훌륭한 도구였다. 한국교회는 이제 더 이상 요리문답서들을 
박물관에 놓아두어서는 안된다. 요리문답을 가르치는 일은 이 시대의 성도들
을 견고한 신앙의 사람으로 세우는 일이 됨과 동시에 과거 신앙의 전통을 후
손들에게 넘겨주는 책임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노력들이 이 시대정신에 대한 저항 행위가 됨과 동시에 하나님
의 교회를 올바로 세워나가는 건설 행위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