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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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의 의의
정두섭 목사/ 전주소망교회, 전주공업대 교목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완연한 봄이다. 사람들은 봄을 가리켜 부활의 계절
이라고 부른다. 이 봄에 우리는 또 다시 부활절을 맞는다. 주님의 부활을
찬미하며, 부활의 복음이 온누리에 널리 전파되기를 우리 모두 두 손 모아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절을 자연의 순환처럼 연례행사로
보내서는 안되며, 다시 한 번 부활하신 주님의 빛 아래서 우리 자신과 오
늘의 교회 그리고 이 세대를 조명하면서 부활의 의의를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 최후의 원수인 사망의 권세를 깨뜨린 역사
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부활생명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복
음이 전파되는 현장에서 다시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사건으로 재현된다. 그
러므로 부활절에는 부활절 잔치나 달걀 나누기 등의 떠들썩한 행사가 중심
이 되어서는 안되고, 그 무엇보다 부활의 메시지가 충실하게 선포되고, 이
를 음미하면서 세상에 널리 전파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부활
절을 복
음전도주일이나 초청주일로 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가 서 있는 근거이며 동시에 우리 개개인의 신
앙의 근거이다. 바울은, 부활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능력으로 증명하셨다고 했다(롬 1:4).
그러므로 부활을 부정하면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정하는 것이며, 기
독교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는 부활을 관념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사실 오늘 현대 교회와 성도들이 점점 더 부활신앙이 관념
적으로 흐르고 있다. 부활의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고 부활을 소망한
다고 하지만 얼마나 무기력하고 침체되어가고 있지 않는가? 주일낮예배의
출석률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새벽기도회나 철야기도회의 열기가 식고 있
으며, 주일오후는 아예 야외에서 즐기는 날로 변하고 있다. 이처럼 초대교
회의 신앙생활과 한국의 전통적인 신앙이 점점 퇴색하여가고 있는 것은 바
로 우리의 부활관이 관념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대변한다.
주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제자들은 어떠했는가? 여인들은 뛰어가서 제
자들에게 알렸고,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으로 달려갔다. 곧 이어 
엠마오로
갔던 두 제자들이 돌아오고, 흩어졌던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모두들 눈동자
가 빛나고, 호흡이 차고, 얼굴들이 붉게 물들어 상기했다. 부활신앙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절망에 처한 인간에게 희망과 환희와 새
로운 삶의 감격과 열심을 불러일으킨다. 지금 우리는 체험적인 부활신앙을
회복하기에 힘을 써야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 부활의 첫열매이시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자들의 부활의 전조(前兆)요,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에 대한 영생
의 보증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생명과 삶과 고난에 동참
하지 않는 자의 내세의 부활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현재 우리의 삶이 부
활의 세계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은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고전 15:3
2)”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은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8)”고 고백하고, 깨든지 자든지 주님과 함께 살고자 한다.
주님은 성도의 부활의 완성을 위해 도적같이 오신다. 지금 주님이 내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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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또는 우리의 생활현장과 교회안에 오신다면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맞이
할까? 우리는 지금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없이 피상적으로 부활을 고대한
다거나 현재의 고난이 없는 부활의 영광을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
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전 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