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크스부르크(AP AFP) 연합 기사에 따르면 로마 천주교와 루터파 개신
교가 지난달 31일 구원론에 대한 논쟁을 끝내기로 하는 선언에 서명함으로
써 500여년만에 화해했다고 한다. 그 내용은 이렇다. 에드워드 카시디 추기
경(교황청 일치위원회 위원장)과 크리스티언 크라우저 루터교 세계연맹 감
독은 이날 독일 남부 아우크스부르크 교회에서 열린 예배에서 “기독교인
의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 아닌 ‘신의 사랑’에 의해서만 정당화 될 수 있
다고 믿는다”는 내용의 면죄와 구원에 대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는 것
이다.
이들의 논쟁은 정확히 478년 전 마틴 루터가 카톨릭의 ‘면죄부’ 판매 관
행에 반발해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조 논제’의 반박문을 내걸어 종
교개혁과 30년 종교전쟁의 불을 지피면서 시작됐다. 종교전쟁과 신·구교
를 분리시킨 이런 교리 논쟁은 ‘어떻게 천국에 이를 수 있는가’를 둘러
싼 이견이었다. 개신교에서는 “인간은 신앙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카톨릭에서는 “신앙과 함께
선행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
해왔었다. 로마 교황청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번 신·구교의 화해
선언은 고난의 역정 위에 기독교 통합의 ‘초석’을 놓은 것이라면서 “몇
세기만에 처음으로 우리가 함께 같은 길 위에서 걷고 있다”고 환영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기어이 천주교가 프로테스탄트에 항복한 것인가? 드
디어 교황이 자신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개혁자들의 외침에 수긍한 것일까?
로마 천주교와 개신교가 그토록 쉽게 화해할 수 있었던가? 그들의 차이가
정녕 구원론의 차이에 불과하단 말인가. 고개가 갸우뚱해지지 않을 수 없
다.
인간의 구원이 신의 사랑(은혜)으로 인해 되는 것임을 인정한다면, 천주교
는 나머지 수많은 교리들을 왜 모조리 수정하지 않는가. 진리는 따로 떨어
진 몇 개 조항들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
으며, 어느 한가지 교리가 깨어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것은 이번 사건이 원래부터 진정한 연합, 진정한 화해가 결코 아니었다
는 것을 말해준다. 한마디로 이번 사건은 정치적 쑈이며, 인간들이 얼마나
진리에 대한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예제
라 하겠다.
진리의 문제는 어떤 선언이나 합의로 타협점을 이룸으로써 해결될 성격의
것이 아니다. “구원은 신의 사랑으로…” 이렇게 말해놓고 자기들끼리 만
족하고 좋아하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연합과 화해, 평화… 이런 것들이 절대적 가치가 되어버리면,
정작 진리가 설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논의 없이 넘어
가자는 것 아닌가?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한다. 소위 평화의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 날마다 선한
것처럼 포장된 비진리의 혼탁함 속에 파묻혀 살다 보니, 우리는 자꾸자꾸
비판력만 무뎌지고 있다.
“서로 사랑해라… 싸우지 말고… 윤리… 도덕…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
지… 사이좋게 놀아라… 뭐든지 열심히 하는 거지… 왜 자꾸 따지고 드
니…” 이런 따위의 부드럽지만 마약과도 같은 음흉한 최면술에 우리는 속
지 말아야 한다. 절대 진리는 하나이다. 그리고 그 진리와 비진리 사이에
회색지대는 없다. 카톨릭은 우리와 연합하고 우리를 슬금슬금 변질시키고,
타락하게 만든 뒤 본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 그것이 그들의 오래된 수법
이었음을 잊지 말자.
오직 진리 안에서, 오직 진리 안에서만 연합은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