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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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를 다닐 때 어느 목사님께서 경건회 시간에 주신 말씀은 바른 것에
마음 설랬던 청중과 나에게 큰 은혜와 깨달음이 되었다.
내용은 당시 헤롯왕이 헤로디아를 취한 일이 죄라고 지적한 세례요한이 감
옥에 갇히게 되고 결국은 사형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더 큰 아
픔은 헤로디아가 세례요한의 목을 요구했던 살상의 현장에서 무수한 귀인
과 방백들이 침묵한 것이다. 분명 그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또한 존
경했으면서도 누구나 그 부당성을 지적하거나 생명을 구하는 일에 나서지
않았다. 이는 직접 살인한 것은 아니나 간접적인 죄요 말하자면 방관죄인
것이다. 이런 미온적이며 확신 없는 태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믿음의 사람
들이 취할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개혁교단에 몸담고 있는 것이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이 된다.
나 자신과 교회와 사회를 바르게 해 나가겠다는 교단인데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기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늘 진리를 탐구하고 세상 돌아가
는 일에 민감하며 바른 일에 몸을 던져야 한다. 어쨌든 
기치를 내걸고 동
참하였으면 갈 길을 가야 하고 이름 값을 해야 한다.
교단을 위해 일하거나 모임이 있을 때 가끔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람을
찾게 된다. 누구보다 더 개혁신앙과 사명감을 가지고 희생과 수고를 아끼
지 않으리라고 기대했던 분들의 모습이 뵙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
에 중대한 일이 있어서인지 혹 병중에 계신지 아니면 이런 저런 이유로 실
망을 하고 모른 척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런 현상은 오히려
유능한 젊은 층에 많을 것이다.
지금의 개혁의 방향을 더 분명히 하고 이론적으로 무장하여 구체적으로 실
천해야 하고 개교회 뿐 아니라 신학교와 총회 상비부의 활동을 통하여 더
욱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그런데 어느 때는 주인은 어디 가고 객들이 설
치는 것 같고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꼭 어설프게 해치우는 듯하다. 하나님
의 일은 결코 무관심과 졸속으로 되어져서는 안 된다. 이 일에 우리 모두
공동책임이 있다. 또 하나의 방관 죄를 범하지 말고 귀한 사역에 자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총회에서도 일군을 선출할 때도 직분을 맡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듯한 풍토나 중요한 
사안에 지나치게 발언을 자제하거나 방조하는 것은 이
미지 관리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우리의 자랑거리는 아니다.
개혁의 칼이든 곡괭이든 들어야 할 때 부채를 든다면 모든 이에게 실망이
된다. 잘할 때는 박수를 쳐주고 혹 부정한 일이나 세속적인 일로 뒷걸음치
면 따끔한 질책을 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교단행사에 동참한다면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
쟁반 위에 담겨진 세례요한의 목이 침묵하는 귀인들의 죄를 물을 것이며
우리의 삶의 자세는 주님과 교회의 판단을 받는다.
우리 교단은 결코 왜소하거나 무기력하지 않다. 많은 인재가 적재 적소에
서 제자리를 찾아 나간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이 시대에 우리
를 부르신 부름에 합당한 길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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