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의 핵심은 ‘자기 부정’
익히 알고 있듯이 죄의 본질은 자기를 주인의 자리에 올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 선언하려는 욕망 위에 놓여 있다.
아담이 최초에 지은 죄의 다른 이름은 교만이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독립 선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하나님처럼 되려 했다. 그리고 하나님처럼 되려는 마음 안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된 존재로서 자기의 판단과 욕구대로 살려는 욕망이 내재되어 있었다. 반면에 성화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식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을 의지해 살아가며, 예수님 안에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존이다. 때문에 피조 의식과 은혜 의식으로 충만한 가난한 영혼만이 성화를 추구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은 우리 삶의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에 지향되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에 이러한 가르침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화는 우리의 이성과 의지가 우리의 계획과 행동을 지배하려 들 때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악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큰 선이다. 이럴 때 순종은 우리를 괴롭게 하는 하나님의 고문이 아니다.
사실 순종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할 때 가능하다. 그 선하심을 의지하는 것과 그의 선하심에 순종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절대선(絶對善)이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에게 무한한 복이다. 곧 선하신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우리의 가장 큰 복락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 본연이 가지고 있는 최선의 상태이며, 그러한 상태는 언제나 하나님 안에만 존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기를 부정하는 것 없이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 성화는 율법의 두 돌판의 정신인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 부단히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 성화의 삶이며,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다. 그러므로 자기 부정이 없이는 매일 매일의 회개, 매일 매일의 전향, 매일 매일의 전투를 지속할 수 없다.
자기 부정이 있는 곳에 인내의 부단한 전진과 성장이 존재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