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이 이 시대를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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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이 이 시대를 사는 법

 

 

우리 주변을 보면 진리에 대해서는 관용적인 태도로 다양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사회 일반의 상식을 강조하며 사회적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이들은 상식과 사회정의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준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진리에 대해선 의외로 자유롭다.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것이 포스트모던 사회에 걸맞은 관용적이며 현대적인 세련된 삶이라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종교적이고 형식적인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교조적인 교리 나부랭이나 붙들지 말고 제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며, 아니 제발 상식 수준의 삶이라도 살라고 조소를 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진리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철저하게 강조하는 듯한데, 상식과 사회정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리만큼 거리가 먼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이들은 대단히 종교적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형식적이다. 자신들이 설정한 종교적 계율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진리에 대해서도 몇 가지 교리에만 집착하면서, 너무도 심하리만큼 교조적인 신앙의 색채를 띤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교리의 의미를 잘 알고 고백하느냐, 그리고 그에 걸맞는 고백적인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래서 이들은 오히려 종종 부패의 소굴이 되며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받기도 한다.

 

진리를 따라 산다는 것은 몇 가지 교리를 역사적 지식으로만 붙드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깨닫고 고백하며 삶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바른 진리는 반드시 삶으로 표출되게 되어 있다. 진리를 생명처럼 여기는 자가 어찌 그 진리를 따라 살지 않겠는가?

 

자칫 기독교가 진리를 도외시하며 상식과 사회 정의에만 집중하게 될 때 일반적인 휴머니즘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또한 몇 가지 교조화된 진리의 파편만을 붙들며 상식과 사회적 정의감을 무시할 땐 부패와 타락에 찌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도 명심하자.

 

우리는 관용과 다양성을 위하여 진리를 버려서는 안 된다. 또한 최소한의 상식과 사회적 정의감 역시 회복해야 한다. 아니, 여기에 머물 것이 아니라 참된 진리 안에서 단순한 상식과 사회정의의 문제를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으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