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전도자의 후원에 대한 이해
바울 사도는 자비량을 원칙으로 삼아 복음 사역을 하였다. 바울의 자비량 원칙은 당시 삶의 지혜나 성공적인 삶의 방식을 가르쳐 준다고 강의를 하면서 모금 행각을 벌이고 있었던 순회 전도자들이나 순회 철학자(지혜자)들과 차별을 두기 위함으로 보인다.
바울이 구원의 복음을 선포한다고 하면서 모금을 했다면 바울 역시 순회 전도자나 철학자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로 여김을 받을 것이며 바울이 전하는 복음 또한 철학의 일종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바울은 복음의 진보를 위해 모금을 하지 않음으로써 복음의 은혜성을 돋보이려 했다. 하지만 빌립보 교회만은 후원에서 예외로 했다.
바울이 마게도냐에서 복음 사역을 하게 된 것을 가리켜 ‘복음의 시초’라고 한 것은 아시아에서 마게도냐로 건너와 복음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은 자신의 선교 역사상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복음 사역을 함에 있어서 괴로움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힘써 바울을 도왔다.
반면에 빌립보 교회의 후원에 대해 바울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자신의 동업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후원을 받지 않아도 자신의 복음 사역을 수행해 나갈 수 있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럼에도 빌립보 교회의 후원을 받아들인 것은 그들의 관대하고 자비로운 태도가 그들의 삶에 더 많은 유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빌립보 교회의 후원은 바울에게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바울은 사랑의 실천이란 단순히 사람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적이고도 거룩한 예배임을 확인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후원을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아주실 것을 의심치 않는다. 그렇지만 빌립보 교회의 후원은 여유와 부요가 아닌 고난과 가난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자신들의 희생적 사랑 그 자체였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우리의 영적 예배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