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탄생 500주년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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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 탄생 500주년에 즈음하여

올해 세계는 칼빈의 이름을 유난히 많이 부를 것이다. 금년은 그가 하나님으
로부터 심장을 받은 지 꼭 반 천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말하는 사람은 결코 칼빈을 지나쳐 갈 수가 없다. 칼빈이 1509년 7
월 10일에 프랑스 노용에서 출생하여 1564년 5월 27일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심장의 박동이 멈출 때까지 55년 동안 보여준 치열
한 활동은 조밀하게 서술된 역사책의 여러 쪽을 차지하고도 남을만하다는 
데 그 이유가 있다. 

그의 역사적 위치는 저 유명한 기독교강요를 비롯해서 주석, 설교, 논문, 반
박문, 신앙고백서, 편지 등의 풍부한 작품(현재 출판되어 있는 그의 전집은 
어른이 양팔을 벌려야 간신히 다 품을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분량을 지니
고 있다)으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칼빈이 역사에서 점유하는 위력은 16세기 이후 세계사에 미친 영향을 살펴
볼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오늘날과 같은 유럽의 정치와 경제가 형성되
는 길목마
다 칼빈의 발자취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고, 미국은 말할 것도 없
고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기타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많은 영역과 관련하여 
칼빈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이참에 칼빈을 최대한 강력하게 비판하자는 움직임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칼빈의 공로를 기리려는 작업이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다. 칼빈
이 목회했던 스위스 제네바의 삐에르 교회(St Pierre Cathedral)에서는 그
의 사망일 근처에 마침 성령강림주일(5월 31일)이 들어있어 대대적인 기념예
배를 드리려고 준비하며, 그의 출생일인 7월 10일에는 국제적인 기념행사가 
마련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칼빈 기념우표를 제작하고 칼빈 길을 만드는 등 다채로운 행
사들이 기획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며, 교파를 초월하고 분과를 막론하
여 학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칼빈과 관련된 논문들이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한번 하고 지나가고 마는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될 것
이다. 오히려 이번 기회가 칼빈을 다시 잘 배우는 수업시간이 되어야 한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칼빈이 성경으로부터 무엇을 말
했는지 알
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좋은 학자들을 통해 칼빈을 제대로 소개받는 일
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아무나 칼빈을 말한다고 해서 정말로 칼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우리 모두가 칼빈의 저술을 많이 읽는 일이 필요하다. 그의 저술을 신
학자들만이 연구하는 글이 아니라 일반신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글로 이해시
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것을 칼빈 저술의 대중화라는 표현으로 바꿔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예를 들면 교단차원에서 일반신자들에게 칼빈 저술 체험하기 프로그램 같은 
것이 제공되면 좋을 성싶다. 아무렇게나 칼빈을 말하는 것이 정말로 칼빈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칼빈 탄생 500주년을 맞이하는 이때 우리가 가장 큰 관심을 기울여
야 할 일은 그의 생애와 신학을 처음부터 끝까지 견인하고 있는 경건과 신앙
이다. 다시 말해서 칼빈과 관련하여 외형적 추구도 필요한 일이겠지만 그보
다 내면적 각인이 더욱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미 우리 교단도 여러 부분에
서 칼빈이 성경으로부터 발견했던 삶, 교리, 교회정치에서 
아주 멀리 있다
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칼빈의 경건과 신앙은 그가 편지의 겉봉에 찍곤 했던 인장에서 한 눈에 띈
다. 이 인장은 전달자에게는 발신자를 숨기고, 수신자에게는 작성자를 알리
는 일종의 암호와 같은 것이었는데, 동그라미 안에 방패를 그려 넣고 그 좌
우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니셜(I와 C)을 적고 방패 안엔 심장을 쥔 채 내미
는 손이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칼빈이 자신의 심장을 죽여 주님께 드렸다는 의미인데, 그가 경구처
럼 부르짖었던 말, “주여, 나의 심장을 당신께 드리나이다, 즉시 그리고 진
심으로!” 와 동일한 내용이다. 

우리는 칼빈의 이 그림과 이 말에서 그의 생애와 신학의 모든 실마리를 찾
을 수 있다. 칼빈 탄생 50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도 바로 
이 경건과 신앙이다. 

우리는 우리의 심장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 심장을 주님께 드렸기에 우리는 
심장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심장이 없다면 이름도 없고, 권세도 없
고, 욕심도 없는 것이다. 

칼빈의 이름을 많이 부르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칼빈을 이름으로만 아는 
것도 무의미하다. 우리가 정말로 칼빈
을 뒤따라 가보기를 원한다면 그를 경
건과 진리로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