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종교개혁은 마음의 개혁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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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종교개혁은 마음의 개혁이어야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봉화에 불을 붙인 지 어언 491년째가 된다. 반 천년
이 된 셈이다. 이것도 이제는 ‘전설’ 속으로 사라져 가는가? 한국교회의 
개혁이 화두가 되어 있는 요즘 참된 개혁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관심
이 요청되고 있다. 

우리말의 ‘종교개혁’이란 말은 영어의 ‘Reformation’이란 말의 번역이
다. 영어에서는 ‘종교’에 해당되는 말이 없다. 우리말의 ‘종교개혁’은 
자칫 하면 일종의 ‘종교 개종’처럼 여겨질 가능성이 있다. 어떤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의 전환을 개혁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종교개혁’
은 절대 그런 것이 아니다. 소위 ‘로마 천주교’에서 ‘개신교’로의 전환
이 종교 개혁의 본질이 아닌 이유가 이것이다. 

용어에 대해서라면 영어도 완벽하지 않다. Re(다시)-Formation(형식을 형성
한다)라는 말의 복합어인 이 용어는 형식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
린다. 마틴 루터의 Reformation은 결코 로마 천주교라는 ‘형
식’에서 개신
교라는 ‘형식’으로 전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이 본질이 아니다. 
그의 종교개혁은 Re-formation이라기보다는 오히려 Trans-formation이다. 
새 포도주를 만들면 새 부대를 또한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복음의 그 잃어
버린 바 된 원형의 내용을 발견하게 되니, 그 형식(부대)도 바꿔야 했던 셈
이다. 그 원형을 회복하게 된 측면에서 오히려 Transformation이다.

그 원형으로서의 ‘이신칭의’가 요즘에는 오해되고 있다. 루터의 그 ‘종교
개혁’ 이후 반 천년이 지나면서 이 ‘이신칭의’의 교리조차도 그 원형을 
상실해 가고 있다. ‘이신칭의’의 ‘신’과 ‘의’가 오해되어가고 있기 때
문이다. 

‘신’(믿음)을 단순히 의지의 결단쯤으로 이해하고 있는 요즘 추세이다. 그
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복음과 유교의 복음, 불교의 복음, 뉴에이지의 복음
이 도대체 구분되지 않게 되었다. 기독교의 복음은 여러 가지 복음들 중의 
하나로 전락되어가고 있다. 

‘의’라는 것도 일종의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체험으로 타락하고 있다. 기독
교는 신비주의화 되어가고 그래서 중세의 기독교로 되돌아가고 있다. 기독

가 기복신앙으로 미신화 되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믿음’은 바로 ‘마음’의 변화를 동반하는 믿음이다. 문제는 이 마음의 
변화가 나의 의지적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곧 ‘마음먹기’
에 달린 것이 절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변화이
다. 십자가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여기에 복음의 역설이 있고, 딜레마가 있
고, 또한 스캔들이 있다. 

내 마음먹기로 마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면, 내 마음의 변화에 대한 책임
도 나에게 없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결국 하나님 맘대로이므로 내 마음의 변
화도 하나님께서 책임지셔야 할 것이 아니던가? 라는 의문을 가지기 쉽다.
이런 딜레마, 의문에는 정당하지 못한 가정과 전제가 깔려 있다. 곧 책임이
란 능력과 지식에 근거한 것이라는 것이다. 일견 정당한 듯 하면서도 결코 
정당하지 못한 것이 이 전제이다. 어떤 범죄의 형벌정도가 그 범죄를 행한 
사람의 그 범죄성에 대한 지식의 유무다소나 그 범죄를 행할 수 있는 능력
의 유무다소에 따라서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현대법정에서 지배하고 있
는 일반적인 논리이다. 

이것에 무
슨 문제가 있는가? 생각해 보자. 어떤 범죄를 저지르면서 그 범죄
가 얼마나 큰 범죄인지를 일부러 알지 않으려고 했다면, 그 범죄성에 대한 
지식의 유무와 다소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이 없겠는가? 

약물을 계속 복용함으로 인해서(그것도 자신의 죄의식을 없애기 위한 방편으
로), 어떤 범죄를 저질렀을 때에 그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해 어떤 죄의식
도 전혀 없는 채로 그 범행을 저질렀다면 과연 그 사람은 아무런 책임이 없
는가? 

어떤 사람이 죄를 저지르면 저지를수록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자꾸만 죄를 저질러서 선을 행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면, 그
렇게 선을 행할 능력이 없어서 저지른 죄에 대해서, 선을 행할 능력이 없었
다는 것이 책임면제의 이유가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책임추궁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자꾸만 죄를 저지를 수 있을 것이
다. 선을 행할 능력이 자꾸만 없어질 터이니까 말이다. 기가 막힌 논리이
다. 이것이 현대법정의 모순이고, 또한 그 현실이다.

먼저, 마음을 개혁하라. 마음을 개혁하는 것이 내 능력이 아니면서도 내 책
임이라는 것이 종교개혁의 중요한 요지들 중
의 하나이다. 오직 하나님께서
만 바꿔주실 수 있는 그 마음의 변화, 하지만 변화되지 않으면 그 책임을 바
로 내가 져야 할 그 마음의 변화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바로 우
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바로 그것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