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연합 6주년을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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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연합 6주년을 맞이하여

남북통일보다 더 어렵다는 교단연합이라지만 합신과 장신이 아름다운 연합으
로 오늘에 이르렀다. 합신과 장신 교단 대표들은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여
러 가지 어려운 사안들에도 불구하고 2001년 가을 정기노회에서 교단 연합
을 일궈내었다. 그리고 11월 6일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두 교단의 연합
감사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하나로 완성되었다. 
그후 오늘까지 하나가 됨으로 인한 불협화음이나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
다. 사소하게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었지만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
며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 결과 두 교단의 연합에서 보여
준 대로 한국교회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교단 연합이 된 것이다. 
이 아름다운 연합을 토대로 교회가 하나되는 운동이 한국교회 전체로 확대되
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믿음과 신뢰의 기초가 더욱 더 다져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해와 존중함이 더욱 더 커져야 한다. 그것은 곧 신뢰와 사랑일 것
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 속에는 아름다운 만남을 이루는 짝이 있다. 이 짝
들이 잘 만나야 하나가 된다. 그 짝이 때로는 돌출적이며 모습이 같지 않은 
데도 잘 맞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거꾸리와 장다리, 훌쭉이와 뚱뚱이처
럼 말이다. 그러하듯이 도시와 농촌도 전혀 어울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
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합신과 장신 역시 한국교회에서 또 하나의 아름다움
과 한국교회의 미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 교단의 연합됨의 향기는 한국교회 전체로 번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
이 곧 세계복음화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많은 활동과 수고가 있는 반면 비전과 파워가 없는 행사성으로 인해 세계복
음화의 주도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뒷북만 치게 되고 사회와 시대
에 대한 초점이 맞지 않는다. 
주님께서 한국교회에 거는 기대가 크실 것이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청사진
이 확실하지 않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하나되는 운동이나 연합운동이 믿음
과 신뢰의 토대 위에 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섬김과 헌신으로 희생하는 마음
이 없이 이기적인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것을 우리 교단이 아름다
운 연
합을 위한 변화의 촉매제로서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그 일을 이루기 전에 교단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신학의 중심성과 
통일성이다. 우리 합신의 신학을 한국교회의 중심축으로 세워야 한다. 한국
교회의 중심성과 통일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목회자들 마음에서 먼저 배타성
을 버려야 한다. 너무 귀한 것을 붙들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배타적이 된다. 
그 배타성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나누이고 있다. 그 나누임으로 하나가 되
는 운동이 어려운 한국교회라는 현실을 낳은 것이다. 배타성을 버리면 말을 
안 해도 남이 알아준다. 우리 합신은 타 교단이 동참하도록 길을 열어 주어
야 한다. 

그 일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일이 있다. 하나는 주님 오실 날이 가까운 이때
에 합동신학교 교수들의 연구와 발표가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다. ‘황
우석 사건’을 보도한 MBC 추적 60분 사건을 보며 그들이 한국교회보다 앞서
서 활동하는 것을 알고 충격적이었다. 나중에서야 한국교회에 줄기세포에 대
한 강연과 연구발표가 있었다. 황우석 사건은 한국교회에 경종을 울린 것으
로 판단된다. 미래와 시대에 대한 장벽과 비전의 불확실
함이다. 
앞으로는 신학자들이 피나는 연구로 한국교회를 깨우고 시대를 알려야 할 것
이다. 황우석 사건 같은 비판은 뛰어난 석학이라도 목회자가 하면 안 된다. 
목회하지 않는 신학자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목회자는 장애인편에 서야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성도들이 많기에 그들을 감싸야 하고 대변해야 한다. 

또 하나는 개혁신보의 거듭남이 있어야 한다. 교단 신문의 사명은 참으로 막
중하다. 신문을 보면 기독교개혁신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우리 교단
은 한국교회의 반딧불로서 충분하다. 이 반딧불을 교단이라는 틀로 가두어 
두면 안 된다. 반딧불을 횃불로 만들 수 있는 것이 개혁신보에 있다. 
신문에 게재되는 글은 엄선해서 잘 실어야 할 것이다. 투자를 해서라도 심
도 있는 글이나 감동으로 동기부여를 주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성
이 있어야 한다. 미래를 예측하고 알려주는 역할을 분명하게 해 주어야 한
다. 왜냐하면 개혁이라는 말속에는 미래성이 빠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종말
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와 미래에 이루어질 일들을 성경으로 조명
하여 알려 주어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가장 중요하
고 시급한 일이다. 
그것은 한국교회에서 기독교개혁신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래야 시대에 앞서
가는 사람들이나 성도들이 구독할 수 있는 신문이 된다. 사회개혁에도 한몫 
할 수 있는 그러한 신문이 필요하다. 신학자들의 왕성한 연구의 발표의 장
을 만들어 주고 시대를 조명하는 필자들의 노고가 꼭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