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역시!
‘혹시’와 ‘역시’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역시’
는 ‘또한, 예상한 대로, 아무리 생각하여도’라는 의미이고 ‘혹시’는 한
자에 따라 약간의 뜻이 다르지만 ‘만일에, 어떠한 때에, 어쩌다가’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로 말해 보자. 혹시는 ‘혹시나’와 비슷한 의미
를 가지는데 ‘혹시 실패하더라도 낙심하지 마라.’ ‘혹시나 하고 들여다보
았다.’ ‘혹시 내가 잘못 본 것이겠지’라고 표현할 수 있다. 내가 잘못 들
은 거야.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일 거야. 일을 맡기면 달라질 거야. 그래도 단
체의 장이 되는 것인데, 이것이 일반적인 회원들이 가지는 단체의 장들에 대
한 기대감일 것이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 속에 ‘혹시’ 했더니 ‘역시’ 그
랬어. 내가 정확했어. 사람은 쉽게 바뀌는 존재가 아닌가봐. 아니야 옛날 기
질 그대로구먼. 바뀔 만도 한데. 이런 말이 교회나 교단의 지도자, 학교의
장이 듣기 쉬운 말들이다.
지금 교단에서 봉사하거나
학교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이 어떤 말을 듣고 있는
가? 자기들은 소신껏 정관과 헌법을 고치고 자기들이 원하는 일을 추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회원들과 이사들의 눈에는 그렇게 좋은 인상만 보여주지
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자기는 개혁주의를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개혁주
의 원리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라기보다 혼합주의 내지는 자기 아성을 쌓는
일이고, 독선적인 일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분은 지도자의
범위와 한계를 정해 달라는 요구까지 할 정도란다.
15년 혹은 25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사람들이 그 단체를 떠나면서 단체장의
인격을 말하고 생활을 말하는 것을 보면 말하는 그 사람도 문제가 있겠지만
지도자가 더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정이 들어 다시 찾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그 사람이 있는 한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있다. 은사를 따라서 봉사하게 하는 것이 지도자로서 단체를 유
익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봉사권에 도움을 주며 잘하는 행정가일 것이다.
그런데 은사가 없거나 자기 기준에서 전문성이 없는 사람에게 아무 일이나
맡기는 처사는 상당히 혼란을 초
래할 것이며, 일의 의욕을 불러일으키지 못
하고, 단체를 어지럽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단체는 자기 개인적
인 유익을 위한 기관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해서 세워 놓으신 단체요 기
관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역시’ 잘하고 있다라고 한다면 얼마
나 좋겠는가? 객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지도자가 아쉬
운 시대이다.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의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역시’ 맡은 일을 잘한
사람이야. 그 단체를 위하여 희생적인 지도자였어. 역사 속에 그런 평가를
받는 지도자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약자 앞에 강자, 강자 앞에 약자
일반적으로 소인배들이 가지는 자세가 ‘약자 앞에 강자처럼, 강자 앞에 약
자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큰 인물이거나 덕이 있는 지도자는 강자 앞에 강
하다. 약자 앞에는 양보하고 약해지는 법이다. 더군다나 스스로 선생, 스스
로 지도자, 이렇게 자기가 자신을 높이는 자는 세속적인 지도자이지 교회의
지도자는 아니다. 세속적인 지도자는 스스로를 높이지만 예수님은 ‘너희
중
에는 그렇지 않을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약한 사람을 보면 애타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다. 예수님은 죄
인들을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 만약에 주님이 강하시다고 약하
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괄시했다면 누가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
며 생애를 바치겠는가?
어떤 사람이든지 지도자로 선출되기 이전에 여러 가지 소문이 있다. 약자 앞
에 강하고, 강자 앞에는 손이 발이 되도록 살살거리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지도자로 선출되면 그 단체가 후퇴하거나 혼란스러울 것이다. 개혁주의는 끝
나는 것이다. 그 사람은 지도자가 아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막상 뚜
껑을 열었을 때 소문 대로였을 때다. 이것은 지도자로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뽑아 놓은 회원들이 후회를 해도 많이 늦은 것이다.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바른 생각을 하도록 권면하고, 은혜로운
설교와 가르침으로 새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이 교회의 지도자이다. 영어 실
력보다는 말씀 실력이 우선이다. 과거의 부족한 점을 들어서 억울하게 한다
면 자신은 어떤 면에서 완전하다는 말인가?
사람들의 평가를 들어보면 일
부분의 사람들이겠지만 퇴출 1호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 앞에는 강자로 나타나니까 그
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중요한 점은 상대는 약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
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도자는 자신을 낮추며 상대를 높이는 사람이 될 때 단체가 편안하다. 전진
하지 않는 것 같으나 말없이 고요한 전진을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정암은
‘침묵정진’이란 말을 쓰지 않았던가? 강자 앞에 강하고, 약자 앞에 약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것이 지도자의 미덕이 아닌가?
사사시대와 같이 스스로 자신을 지도자라고 생각하며 자기 소견에 옳은 대
로 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과 같은 기도와 말씀, 경
건의 모습을 갖춘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주시도록 우리 모두 기도해야 할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