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1907’과 예배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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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게인 1907’과 예배 회복

올해는 1907년 평양 대부흥이 있었던 때로부터 100주년이라는 이유로 교계
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기관들과 대형 교단들을 주축
으로 벌써부터 ‘어게인 1907’을 표어로 내걸고 각종 행사를 기획, 실행하
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한 조사에 따르면 올해 각 교회의 표어로 ‘부흥과 전도’가 대
세를 차지하고 있다(기독교개혁신보 3월 10일자 447호 3면). 이것은 평양 대
부흥에 대한 기대치가 그대로 각 지교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
다. 하지만 정작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예배의 회복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예배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편의 반응이다. 주지하듯 하나님의 계시에
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가 있다. 사실 일반계시란 것도 특별계시의 조명과 
인도가 없다면 부패한 인간이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
할 때 특별계시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우리는 성
경 말씀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을 인식하게 될 때 그 하나님의 성
품, 창조와 구속사역, 섭리와 은혜, 심판과 권능을 알게 된다. 이 영적 각성
을 통해 하나님이 예배와 경배받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깨닫게 된다. 즉 계시
된 하나님의 실존 앞에 있는 피조물로서, 구속받은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자
녀로 입양된 은혜받은 자로서 비로소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설교(하나님 말씀의 선포)라 해
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인간에게 계시하신 말씀이 없다면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으며 예배로 나아갈 수도 없기 때문이
다. 

오늘날 강단에서 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는 것은 우리 시대 참된 
예배가 사라지고 있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 개혁자들은 이런 행위에 대
해 ‘우상숭배’라고 규정한 바 있다. 말씀의 기준을 따라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잘못이고 죄라고 성경은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편의 행위적 열
심이나 엄숙한 분위기 또는 종교적 감흥도 아니며 우리가 열심히 노력했다
고 해서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렸다고 착각해
서도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예배 행위, 즉 형식이나 구성 요소와 의미 등은 늘 말씀과 성령의 조
명 아래 이뤄져야 한다. 말씀의 조명없는 인간의 어떠한 행위도 하나님을 기
쁘시게 할 수 없으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
다. 이는 마치 타락한 인간 존재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음과 동일하다.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 아래에서 그리스도의 외와 공로를 
성령의 역사로 덧입게 된 인간만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는 것이 전제
되어야 한다.

말씀 선포란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대로, 말씀만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
에 오직 성경(sola scriptura)과 전체 성경(tota scriptura)의 개념이 적용
된다. 즉 ‘오직 성경’ 안에서 설교의 범주가 말씀에 제한되어야 하며 ‘전
체 성경’ 안에서 화자(speaker)를 통해 하나님의 진의와 본의가 드러나야 
한다. 누구나 성경을 말한다. 심지어 교회의 대적자나 이단들도 그렇다. 그
러나 전체적인 맥락과 배경에서 이해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이해를 가질 수도 있기에 우리시대에 ‘전체 성경’으로의 정신은 강조
되어
야 할 항목이다.

지금의 한국교회의 열정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는 예배의 회복이 전제되지 않은 가운데 이런 열심과 정열은 
참된 부흥으로 이어질 수 없다. 일말의 가능성까지 배제하지는 않지만 하나
님의 바른 계시가 참 예배와 부흥의 전제란 점은 분명하다. 

예배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면 우리에게 바른 설교
가 회복될 것이다. 그래서 말씀 앞에서 두려워 떨며 복음 가운데로 나아가
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에 감격하여 기쁨과 희락이 넘침을 경
험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창조사역과 구속사역 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의 영
광이 교회 가운데 예배 중에 충만하게 선포되고 드러나지게 되는 일이 일어
나야 한다. 이것이 참된 예배의 회복이다. 

우리는 우리의 부족과 무능한 현실 앞에 그리스도의 위로와 공로를 기대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겸허한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의 주인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어게인 1907’보다 더 고귀한 참된 교회의 부흥이며 예배의 회복
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