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화시대에 기독교가 배타성을 버려야 전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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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화시대에 기독교가 배타성을 버려야 전진할 수 있다

박형택 목사

다원화시대에 타 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시각이 바뀌어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
한다. 과거 이스라엘 시대와 오늘의 시대를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
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삼으셨다. 그들
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십
계명을 주시므로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분의 명령을 따라 살도록 하
셨다. 그들은 다른 신을 섬길 수도 없었고 다른 신을 만들 수도 없었다. 하
나님의 계명을 주셔서 다른 신 곧 우상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사실상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 이방이 섬기는 다른 신은 진
짜로 그러한 신이 있어서 신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것은 사람의 종교심에
서 나온 것을 신이라고 만들어낸 사람의 수공물일 뿐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이 참 신이 아닌 이방의 신 곧 우상을 받아들여 그것을 
음란하게 섬기자 하
나님은 진노하셨고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우상을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표시였고 이스라엘 안에 있는 우상
은 하나님과 그 백성들에게 증오의 대상이요 파괴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바
알신상을 부숴버린 사사 기드온은 용사요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넘치는 사람
으로 칭찬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한 나라 안에 많은 종교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만이 
있는 나라가 아니다. 이미 국가에서 타종교에 대하여도 자유롭게 자기들의 
신을 믿을 수 있도록 종교의 자유를 부여하였다. 다종교시대속에 기독교인으
로서 우리가 있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인은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우리 기독교가 볼 때는 우상
을 믿는 것이요 헛된 신을 믿는 사람들이다. 물론 다른 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 참 신처럼 믿는 것일 뿐이다. 그런
데 다른 사람들이 믿는 종교에 대하여 우리가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 것
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에 있어 우상이나 다른 신은 타도
의 대상이요 파
괴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 기독교는 타 종교에 대하
여 타도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선교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 분명하
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타도의 대상이라면 적개심을 가지고 정복해야 하고 
없애야 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하나님은 가나안 백성을 타도
의 대상으로 더 이상 그들의 범죄를 묵과할 수 없기 때문에 정복의 대상으
로 허락하셨다. 그래서 모든 가나안 백성들은 이스라엘의 칼날앞에 죽어갔
다. 

오늘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아야 옳은 것인가? 아니
다. 선교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이방인까지 부르셨다. 따라서 오늘의 시대는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
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선교의 대상이다. 따라서 적개심을 가지고 대할 것
이 아니라 사랑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에 대하여 
그들을 존중해 주면서 그들이 마음을 열고 참 신이신 주님께로 나아올 수 있
도록 감동시키는 작업이 우리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죄는 밉지만 죄인은 사랑해야 하는 것처럼 이방신에 대한 적개심
은 있어도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을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대해야 할 것이며 선교와 전
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오늘의 한국의 기독교정서는 전투적인 것들이 많다. 기독교가 한국의 전쟁
과 함께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안에 군대용어가 상당히 많다. 
무슨 특공대니 무슨 작전이니 하는 등 호전적인 정서를 풍긴다. 기도나 전도
에 있어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문제는 지나
친 호전적 태도가 타 종교인들에게 적대감을 갖게 하고 기독교인 또한 적대
감을 가지고 타 종교인들을 대할 때가 많다. 기독교가 유일한 구원의 종교임
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같을 수 없다. 배타적일 
수 밖에 없다. 구원문제에 관한한 다른 종교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러나 기독교가 배타적인 자세를 가지고 다른 종교인들을 대한다면 적대감만 
커져갈 뿐 전도와 선교를 하는 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기독
교인은 타 종교인들에 대하여 타도의 대상이나 정복의 대상으로 더 이상 보
아서는 안된다. 오히려 기독교인은 타종교인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
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타 종교인들에게 적개심을 불러 일으키는 배타적
인 행동이나 타도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갈수록 종교적인 마찰이 늘어나
고 있는 상황에서 적대감을 갖게 하는 기독교인들의 행동은 기독교 선교에 
방해는 될지언정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즈음 이 시대를 포스트 모던시대라 하여 다종교, 다원화를 당연시하는 풍
토가 만연해져서 종교간의 대화를 열려하고 심지어 카톨릭에서는 석탄일에 
신부가 절에 가서 강연을 하고 불교에서는 성탄절에 성당에서 승려가 설법
을 하는 상황까지 왔다. 특히 “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쓴 오강남교수 같
은 분은 스님과 같이 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같이 가는 길벗”이라고 종교
는 다르지만 길은 같다는 태도로 신문지상이나 책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나
타내기도 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태도는 철저히 반대한다. 기독교는 절대 혼
합주의종교가 될 수 없다. 다만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자세로 타종교인을 
타도의 대상이나 정복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타종교인을 전도하는 것이 어렵
다는 뜻이요 타 종교들인들이 기독교인을 향하여 등을 돌리고 세상 사람들
이 기독교인을 
외면한다면 어떻게 전도와 선교의 길이 막힌다는 것을 강조하
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