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에 대한 한국교회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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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에 대한 한국교회의 책임

신현수 목사_평택대학교 교수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념의 극심한 분열뿐 아니라 빈부의 양극화 현상이 점
점 심화되고 있다. 최근 한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15.6%가 재산이 거의 
없고, 근로자의 87%가 월수입이 120만원이 되지 않으며, 18%가 하루에 돈이 
없어 끼니를 거르며, 7%가 신용불량자하고 한다. 또한 전체 노동자의 13%가 
25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간다고 한다.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 절대 빈곤의 문
제는 시급히 풀어야 할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이러한 빈
곤의 문제를 한국교회는 어떻게 보고 가난한자에 대하여 져야 할 책임은 무엇
인가?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에 사회를 이끌었으나 지금은 세속적 가치관에 물들여 
있다. 이러한 현상에 이르게 된 데에는 복음 전도의 대상으로만 사회를 보고 
사회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하지
만 복음이 말하는 신앙은 성
경의 진리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상황에 적
용하려는 노력을 포함한다. 창조 질서는 구원의 삶을 이루어 가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주로 드러나기 
위함이다. 따라서 빈곤의 문제는 한국교회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임이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의 당위성은 성경의 가르침에 의해 밝혀진다. 하나님은 가
난한자를 특별히 돌아보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정의의 법에 
따라 살 것을 요구받았다. 그들이 가난한 자들을 부당하게 대우할 때에 하나
님은 그들을 심판하셨다. 하나님은 또한 자신을 가난한 자와 동일시하신다. 
주님은 가난한 자로 이 땅에 오셨고 가난하게 지내셨으며 제자들을 가난한 상
태로 파송하였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들어서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은 정치, 경제 및 군사적으로 미약한 이스라엘을 통해 
이 땅의 모든 민족들을 위한 계시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었다. 

주님 역시 강력한 권력을 가진 로마 황제나 산헤드린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두개인이 아니고 작은 나사렛 동네의 한 가난한 목수에 지나지 않았다. 주

의 제자들도 대부분 가난한 보통 사람이었다. 초대교회 다수의 구성원들도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물론 하나님이 부유하거나 권세 있는 사람들을 
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라고 명령하셨다. 성경
은 부자들이 가난한 자를 직접적으로 억압한 것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들이 필
요한 것을 그들과 나누지 않은 것에 대해 책임을 돌리고 있다. 소돔 성이 멸
망한 것은 성적 타락과 아울러 그 성 사람들이 가난한 자와 필요한 것을 나누
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선지자들은 가난한 자를 돌아보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
을 모욕하는 것이라 가르쳤다. 가난한 자를 무시하는 사람은 따라서 진실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다. 주님 역시 부자에게 가난한 자를 도울 것을 명령
하셨다. 삭개오 이야기는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을 구원받는 사건과 연결시키
고 있다. 주님은 경건한 종교적 행위를 하면서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사람에
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을 선포하였다. 주님은 이웃 사랑의 의미를 새롭
게 나타내셨으니 그것은 곧 궁지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
이다. 

그러면 한국교회가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책임을 감당하기 위한 구체적 방향
은 무엇인가? 
첫째, 경제적 정의 실현이다. 구약의 십일조와 베고 남은 곡식을 줍는 제도들
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화와 정의로운 공동체를 이루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안식년 제도는 단순한 구제보다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경제적 정의
를 교훈하고 있다. 한 걸음 나아가 레위기 25장에 나타나는 희년 제도는 경제
적 정의를 증진시키는 제도적 메카니즘을 발전시켜 가는 것을 가르친다. 
둘째, 청지기 의식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지은 것이기
에 그 소유권은 하나님에게 있다. 따라서 그 모든 것은 주인인 하나님의 뜻
에 따라 관리하고 보존하며 사용하는 돌보는 책임이 요구된다. 
셋째, 물질적 교제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제적으로 나눌 것
을 가르쳤다. 그리스도의 몸과의 코이노니아(사귐)은 구체적 경제적 관계를 
시사하기도 한다. 바울이 지역교회에서 돈을 모금한 것은 인종과 지역을 넘어
서 모든 믿는 사람들이 서로 경제적으로 필요한 것을 나누기 위함이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가 
빈부의 양극화를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
을 모색하는데 있어 성경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원리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
다. 그래서 혼란과 절망에 빠진 우리 사회에 희망의 빛을 비추는 책임을 감당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