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선거문화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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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선거문화를 염원한다 

김영재 교수/ 합신

1948년 5월 10일 제헌 국회 구성을 위한 총선 때부터 반세기를 지난 오늘
에 이르기까지 선거 때마다 사람들은 공명선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해 왔
다. 그러나 유권자에게 제공되는 금품 살포, 향연 등 미개한 사회에서나 흔
히 볼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선거부정은 시들어질 줄을 모른다. 집권당의 세
력이 공고해지면서부터는 폭력 또는 관권 동원이나 투표함 바꿔치기 등 보다 
악랄한 수법이 자행되기도 했다.

주로 집권당이 저지르는 이런 범죄에서 비교적 자유로우면 공정한 선거를 치
렀다고들 관계자들이 말하였다. 폭력 또는 관건 선거는 여야가 선거를 치르
는 데 있어서 공정성을 저해하는 것이므로 그런 것만이라도 줄어들면 여야간
에 공정했다는 의미에서 비교적 공명한 선거를 치렀거니 하고 국민들도 인정
했다. 

그러나 돈 쓰는 선거의 관행은 법적인 규제와 시민들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눈덩이처럼 더 커지기만 하였다. 
마치 빙산이 물위로 
드러나 보이는 부분보다 물아래로 잠겨 있는 부분이 훨씬 거대하듯이 선거와 
관련된 돈의 규모와 향방은 드러나 보이는 것보다는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엄
청나게 큰 것임이 오늘에 와서 검찰의 사정을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 

소위 선거자금이란 이름으로 벌어들인 음성적인 정치자금의 규모와 그것의 
용도는 미지수이다. 여와 야는 이미 드러났거나 앞으로도 드러날 수 있는 음
성적인 자금의 규모를 두고 서로 비교하면서 비교적 결백함을 주장하거나 규
모의 크기 차이가 무슨 대수냐 하면서 저지른 부정을 상쇄하려고 한다. 정치
하는 이들이 부도덕성을 상대적으로 이해하거나 변명하려고 하니 건전한 선거
와 정치 문화에의 길은 요원함을 느낀다. 

선거를 두고 해결해야 할 일은 돈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의 선거 역사에서 
선거가 있을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선거법을 개정하는 것을 일삼아왔다. 선거
에서 유리한 고지를 사전에 점하기 위하여서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들도 돈 적게 쓰는 선거의 가능성을 위하여 고민하며 
선거에서 치졸하게 인신공격을 하기도 하지만 선거는 
늘 정해진 규칙에 따라 
행한다. 경기를 시작할 때마다 경기 규칙을 바꾼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 데서는 페어 플레이는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다. 정치인들이 선
거법 개정을 다반사로 하거나 그리고 그런 사고방식에 익숙해 있고 또 국민들
이 그것을 예사롭게 받아들이는 한 공정한 선거 문화의 형성은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민단체들이 지난 선거에서 특정한 정치인들의 낙선 운동을 벌여 후보자들
의 당락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그것에 대한 합법성 여부를 두고 논
란도 있고 비판도 있었으며 부분적으로 부당하다는 판결도 있었으나 이 번에
도 강도 높은 낙선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 찬성하든 않든 그들
은 부정적인 선거 문화와 풍토를 나름대로 바꾸어 보려고 애쓰는 것임을 인정
하게 된다. 

교회의 지도자들과 그리스도인들 역시 비록 방법은 다를지라도 건전한 선
거 풍토가 조성될 수 있기 위하여, 아니 이 번에 다가오는 선거를 절망적인 
상황에서나마 그래도 옳게 치를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니 그러기 전에 교회를 이끌어 가는 이들
이 먼저 교회내의 건전
한 선거 문화를 위하여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들추기 싫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세상의 ‘돈 쓰는 선거’에 교회가 오염된 것이 어제오늘 일
이 아니다. 총회장이 무엇이기에 세상의 폐습을 따르는 것인지 알 수가 없
다. 교회가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참으로 슬프고 부끄러워 통분할 
일이다. 

빛과 소금이자 산성처럼 우뚝 높이 서야 할 교회가 돈 쓰는 선거를 청산하
지 못하고서는 세상에서 부정의 상쇄를 통하여 자기 정당화를 꾀하고 체면을 
유지하려는 정치인들을 탓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는 우리가 건전한 선거 문
화의 형성을 논할 수조차 없다. 아니 건전한 선거문화의 염원이란 논제는 교
회 안팎에서 시행되는 모든 선거를 다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