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능력을 힘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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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능력을 힘입자

김재성 교수

소망이 없는 세상의 어지러운 모습들이 올해도 역시 4월을 혼란 속
에 빠뜨리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의 유산에서 우리 개신교회는 더 이상 로마 
카톨릭의 경축일이나 절기를 지키지 않는다. 칼빈의 제네바에서부터 오직 주
일날에만 주님을 섬기도록 결정하였다. 성탄절이나 부활절이라고 해서 유달
리 행사를 하고 법석을 피우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 개혁주의 교회들이 최근에 지나치게 교회력의 부활을 꾀하는 
경향이 있다. 사순절을 지키고, 무슨 날을 찾는 것은 구약시대의 율법주의에
서 나온 것이다. 이사야서 1장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형식적 절기엄수
에 대해서 엄중히 경계하였다. 따라서 개혁교회는 부활절을 맞이한다고 해서 
무슨 요란스러운 행사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부활절 카드 보내기 운동을 전
개한다고 하는데, 아무런 신학적인 근거도 없는 일이라서 더욱 생각해 보아
야 할 것이다.

문제는 한국 교회가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서 더욱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희망을 되살리는 일이다. 한국 개혁주의 교회들은 최근에 양적인 
성장의 정체현상을 빚고 있다. 불신자들의 세계에 교회가 파고 들어가야 하는
데 여력이 없고, 경제적으로 부족하고 힘이 없다.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이
겨내신 예수님의 부활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고 이를 극복해야 하겠다. 개
척교회들이 활성화되고, 중소 교회들이 왕성하게 주의 제자도를 배우려면 다
른 방법은 없다. 오직 부활의 능력으로 새롭게 변해야 한다. 

절기를 지키는 의미로서 맞이할 것이 아니라, 부활의 권능과 소망
과 감격을 체험하며 되살리는 주일 날로 맞이하여야 한다. 더욱이 우리 한국
교회는 이 날에 성만찬을 거행하는 경우가 많다. 성령의 신비로우신 역사하심
으로 우리가 교회에서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성찬에 참여할 때에 주
님과 함께 더불어 먹고 마시면서,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고귀한 시간이다. 
새로운 헌신의 다짐과 함께,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
는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는 날이 되기를 소원한다. 

개혁주의자들의 연합정신 

최근에 한국기독교 각 교단과 교파 지도자들에 의
해서 개신교회의 
연합이 추진되고, 장로교 내부의 연합 논의도 활발하며, 각종 모임도 많아지
고 있는 것 같다. 매우 고무적이요 진취적인 자세로 대해야할 일이다. 
개혁주의 교회는 한국교회에서 분열주의자라는 오명이 있는데, 이
를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몇 차례의 교단분열은 명분이 
없으며, 더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찬동하는 교단들이 백 여개에 이
르는 현실은 도무지 세계 교회사에 유래가 없는 일이며, 글로벌 시대에 사는 
현대사회에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이미 모범적인 연합을 이룬 우리 대한예
수교 장로회 합신 교단은 더욱 진일보한 자세로 바리새주의를 극복해야만 한
다. 

연합운동에서 경계하고 조심해야할 것은 신학적인 혼합주의다. 개
신교 기본교리를 서로 확인하지도 않는 채, 정치적 계산으로 합하는 것은 오
래가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다. 따라서 연합을 논하는 한국교단들
의 성경관이 과연 일치하는 것인지, 기독론, 구원론과 교회론이 서로 형제교
회로서 같은 것이지 최소한만이라도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 
신정통주의 신학이 흐르고 있는 교단에 
대해서는 엄격한 주의와 경계를 요청
하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칼빈주의 신학에 동감하는 교단들은 조속히 교제를 강화하
여 나가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10년, 20년, 30년 간의 장기 계획을 수립하
여 이를 추진하는 연합기구가 발족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개혁주의 교회의 
공고한 연합을 추진시켜 나가는 일을 미뤄두지 말고 기도하는 가운데 소중히 
싹을 키워야 할 것이다. 

신근본주의자들처럼 사소한 교리적 차이에 얽매여서는 안 되는 것
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성취해온 순수하고 건실한 작은 교단의 이미지 고수에
만 사로잡혀 있다는 외부의 충고를 겸손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소아병적
인 자기아집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합신교단을 존중하고 합동신학대학원 
대학교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국내 여러 장로교회들과의 폭넓은 연대와 교
단일치운동은 누구에게 떠맡길 일이 아니라 지금 교회를 섬기고 있는 우리 각
자의 시대적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