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안전 불감증이 부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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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안전 불감증이 부른 참사

송영찬 국장

지난 18일 발생한 대구 지하철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유족들에게 심심한 애도
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총체적인 부실이 낳은 참사로 인해 소중
한 가족들과 친지들과 친구들을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참사는 지하철 사령실, 기관사 그리고 승객들이 상황을 신속히 파악, 초
기 대응만 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다. 이것은 지하철 운행당국의 사
고 인지와 위기 대처 능력이 얼마나 부실한 것인가를 말해준다. 또한 위기 상
황에 직면해 지하철 당국이 보인 안이한 대처는 참으로 이 사회가 안전 불감
증에 얼마나 깊이 병들어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처음 객차 화재 당시 지하철 사령실이 중앙로 역의 이상을 감지하고도 단순
히 주의만으로 전동차의 승강장 진입을 허가했다는 점, 이미 전동차가 불길
에 휩싸였는데도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는 점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이
것은 이번 참사가 단순 
사고가 아닌 전형적인 인재(人災)였음을 증명한다.
20일 경찰이 공개한 사고직후 사령실과 사고 전동차 기관사 사이의 무전 교
신 내용에 따르면 하행선 전동차에 방화로 화재가 발생하고 반대편에 도착한 
상행선 전동차에도 불이 옮겨 붙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상행선의 정상 운행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0여명의 승객을 싣고 중앙로 역에서 불과 1개역을 사이에 
둔 칠성 역에 도착해 있었던 1082호 전동차는 다행히 선로 단전으로 운행하
지 못해 참변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만일 1082호조차 사령실의 지시대로 
운행했었다면 더욱 엄청난 사태를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사령실이 화재 발
생 후 22분이 지나서야 전동차 운행을 통제했다는 것은 사고 상황에 대한 아
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할 정도로 지하철 운영에 문제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
다. 

상행선 1081호 기관사조차 유독가스로 가득 찬 승강장을 목격하고도 그대로 
진입한 뒤 10여분이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점도 묵과할 수 없다. 이
상 징후 발견 즉시 전동차를 정차시켰거나 승강장 진입 후 승객들을 대피시켰
다면 이처럼 큰 참사로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079호 전동차에 화재가 발생한 3분 뒤 중앙로 역에 진입한 1080호 기관사는 
화재 발생한 사실을 알고도 중앙로 역에 진입했던 것이다. 사고 발생 15분이 
지날 때까지 기관사는 단전으로 전동차가 움직이지 못하는데도 승객들의 대
피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기관사가 운전 사령에게 출발 여부를 허
가를 받아 발차를 시도했지만 끝내 전동차를 움직이지 못한 채 수많은 생명
을 화마 속으로 몰아넣고 말았던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유독가스가 전동차 안으로 스며들고 있는데도 승객들은 
탈출할 생각을 안하고 10여분간이나 승무원의 안내 방송만 기다렸다고 한다. 
승강장에서 출입구까지 불과 2∼3분이면 빠져나올 수 있는 거리였다니 조금
만 일찍 지하철 당국이 신속하게 대처했더라면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
을 것이다.

그동안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근본적인 대안을 강구하고 대
처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 왔다. 그러나 막상 또 다른 사고가 터지고 나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대처 방안 운운 등의 소리를 또 들어야 만 하는 것이 
안전 불감증에 걸려 있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국회 재해대책특위는 20일 전체회의를 열고 새 정부에 `
재난관리청’을 신설할 것을 촉구하는 특별 결의안을 의결했다고 한다. 아울
러 대책위는 전문가들과 함께 서울과 부산 등의 지하철 안전 점검에 나서기
로 했으며 대형사고 방지를 위한 공청회를 개최해 각계 의견을 수렴키로 했다
고 한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친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미 숨져
간 고귀한 생명들에 대해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화재와 동시에 정전되는 바람에 승강장이 순식간에 암흑천지로 변해버려 수많
은 사람들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 숨졌다는 단순한 사실을 개선하는 것
이 더 급선무일 것이다. 정전 상태에서도 최소한 출구로 통할 수 있도록 발광
하는 안내 선을 설치되어 있었다면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했을 것이다.
불의의 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언제까지나 원인 대책에 급
급해 한다면 도 다른 형태의 사고는 전혀 대처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여러 유
형의 사고가 발생할 것을 전제하고 사후 대처 방안이나 시설에 투자한다면 그
것이 위급한 상황에서 근
본적인 대책을 찾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힘이 되지 
않겠는가.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도 지적하는 것처럼 전동차 내부가 비가연성 
물질이나 유독 가스를 내품지 않는 자재로 시설하는 것이 ‘재난 관리청’을 
수 십개 신설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전국 곳곳에 널려 있는 병원, 위락 시설 등 사고 발생 위험 업소와 장소
에 대한 시설 관리와 비상 사태를 위한 대처 방안을 미연에 점검하는 일도 결
코 소홀히 해선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고는 남의 일이라는 무사 안일한 
태도를 버리고 우리 각자의 안전 의식을 고취하는 일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
다. 특히 교회당의 지하실이나 복도 등의 안전 시설도 이번 기회에 점검할 필
요가 있으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다각적인 안전 대책도 서둘러 마련해 두어
야 할 것이다.